[횡설수설/박용]창조경제 ‘모델 벤처’의 파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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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록 미래창조과학부 제2차관이 2010년 번역한 댄 사노르와 사울 싱어의 책 ‘창업국가’는 창업 천국 이스라엘의 성공 비결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의 본문 첫 장은 이스라엘의 ‘스티브 잡스’로 불린 샤이 아가시(45)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라크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아가시는 24세에 벤처기업 ‘톱티어 소프트웨어’를 세웠다. 그는 이 회사를 독일의 세계적인 소프트웨어회사인 SAP에 4억 달러에 매각해 ‘벤처 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1999년 회사 매각 후 SAP 고위 임원으로 일하던 아가시는 2005년 “이스라엘이 석유에서 벗어나도록 하겠다”며 전기자동차 벤처기업 베터플레이스를 세웠다. 전기차의 약점은 1만 달러나 되는 비싼 배터리. 아가시는 휴대전화의 보조금 약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전기차를 팔 때 배터리 비용을 빼고 싼값에 보급하는 사업모델을 구상했다. 베터플레이스는 배터리 비용을 대되 전기 충전소와 배터리 교환소를 운영한다. 전기 값과 휘발유 값의 차액으로 투자비를 회수하고 수익을 내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

▷자동차의 연료인 석유가 아랍 산유국의 무기 구입을 위한 돈줄로 쓰이는 것을 우려하던 이스라엘 정부는 아가시의 ‘석유 독립’ 아이디어에 주목했다. 시몬 페레스 전 이스라엘 총리가 인맥을 동원해 후원자로 나섰다. 아가시는 2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고 르노닛산의 최고경영자(CEO) 카를로스 곤을 사업 파트너로 끌어들였다. 사업을 덴마크 일본 중국 호주 네덜란드로 넓혀갔다.

▷그런 베터플레이스가 26일 현지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혁신적인 벤처기업가와 벤처캐피털, 정부의 전폭적 지원, 글로벌 자동차회사와의 협력도 성공을 보장해주진 못했다. 유가 하락으로 전기차 판매가 기대를 밑돌자 적자를 이기지 못했다. 벤처업계에서는 “성공하려면 딱 반 발만 앞서 가라”고 한다. 기술과 아이디어가 좋아도 소비자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실패한다는 거다. 이른바 ‘혁신의 저주’다. 글로벌 기업이 장악한 시장에서 후발주자가 판을 뒤집는 혁신은 그래서 어렵다. 아가시의 도전 정신은 배우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이스라엘 모델은 대안이지 정답은 아니다.

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
#미래창조과학부#창조경제#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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