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최영해]무서운 미국 경찰, 무른 한국 경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8일 03시 00분


최영해 논설위원
최영해 논설위원
북한의 천안함 폭침사태 직후 나라가 어수선했던 2010년 4월 주미 한국대사관이 발칵 뒤집힌 일이 벌어졌다. 대사관의 한 고위 간부가 업무시간에 불법 퇴폐 안마시술소에 있다가 현지 경찰에 적발된 것이다. 대사관에서 자동차로 30분 이상 떨어진 한적한 교외였다. 한인들이 운영하는 퇴폐 안마시술소가 늘어나자 골머리를 앓던 현지 경찰이 현장을 덮쳤다. 이 간부는 퇴폐 서비스는 받지 않았다고 주장해 경찰 조사를 받은 뒤 풀려났다. 하지만 주미 한인 여성들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인 ‘미시USA’에 주미대사관 소속 외교관 차량번호(앞 번호가 DWD다)를 단 차가 마사지 업소 주차장에서 발견됐다는 글이 한때 올랐다. 그 뒤 입소문을 통해 빠르게 전파됐고 주미대사관은 내부 감찰을 벌이는 소동을 빚었다.

대사관은 쉬쉬하며 덮으려 했다. 아까운 장병들이 여럿 목숨을 잃어 온 나라가 침통한 와중에 대사관 고위 간부가 퇴폐 안마시술소를 들락거렸다는 게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한덕수 주미대사는 사건 발생 두어 달이 지난 뒤에야 권력기관 출신의 이 간부를 한국으로 조용히 귀국시켰고 해당 부처는 사표를 받았다.

이듬해엔 기무사와 국방부 장교 출신 대사관 간부 2명이 음주운전을 하다가 경찰에 걸린 사건도 있었다. 만취한 이들은 늦은 밤에 운전하다 차를 잠시 길가에 세운 바람에 경찰 순찰차에 적발됐다. 경찰은 운전자와 동승자가 모두 만취한 사실을 밝혀내고 국무부에 통보했다. 미국에선 대리운전도 흔치 않다. 음주운전은 중범죄로 간주된다. 국방부는 사건에 연루된 무관부 소속 간부 2명을 본국 소환 조치했다. 국무부에서 대사관으로 범죄 사실이 통보되는 순간 외교관 생명은 사실상 끝장난다. 외교관이나 주재관에게 본국 소환은 씻지 못할 불명예다.

미국 경찰은 한국 경찰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힘이 세다. 제복을 입은 경찰의 공무 집행에 저항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경찰 지시를 무시하고 달아나다 총을 맞는 것은 영화 속 장면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다. 일반인 총기 소유가 허용된 미국에선 어디서 날아올지 모를 총탄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은 쉽게 총을 꺼낸다. 워싱턴 의회경찰이 미 의사당 앞 보도에서 연좌시위를 하던 빈센트 그레이 워싱턴 시장을 현장에서 붙잡아 수갑을 채우는 장면은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미국에선 놀라운 사건이 아니다. 현직 장관이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에 걸려 재판에 회부돼 사임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경찰의 법집행 과정에서 권력자라고 봐주는 일은 흔치 않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인턴 여대생 추행 사실을 경찰에 고발한 워싱턴문화원 소속 여직원은 ‘911’에 전화를 걸어 신고했다. 911은 화재가 났거나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또는 아주 긴급한 위험사태에 처했을 때 구조를 요청하며 신고하는 비상번호다. ‘응급상황(emergency)’이기 때문에 경찰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출동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워싱턴 경찰은 현장에서 피해자를 조사했지만 윤 씨를 잡지 못했다. 경찰이 윤 씨를 안 잡았는지 못 잡았는지 확실치 않지만 윤 씨의 빠른 귀국 결정엔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이 있었던 것 같다. 짐 가방도 내팽개치고 공항으로 줄행랑친 것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미국 경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경찰 신고 후 현장에서 잽싸게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 코치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무서운 미국 경찰과 비교하면 시위대에 멱살 잡히고 두드려 맞기까지 하는 한국 경찰은 물러도 참 너무 물러 터졌다. 일선 파출소나 지구대에선 심야에 술 먹고 행패 부리는 사람들로 경찰이 밤새도록 홍역을 치른다. 국민이 경찰 무서운 줄 모르는 나라다.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 방한 중에 윤 씨와 비슷한 사고를 쳤다면 우리 경찰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한국 경찰#미국 경찰#윤창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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