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염재호]상하이포럼서 본 동아시아, 꿈틀대고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8일 03시 00분


영유권 분쟁 조장-역사왜곡… 국가주의 부활시키는 日
미국과 대등한 군사외교 바탕 ‘평화로 포장한 힘’ 과시하는 中
동아시아 ‘새판짜기’ 전쟁중… 우리도 미래의 초석 다져야

염재호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염재호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지난 주말 중국 상하이 푸단대에서 열린 2013 상하이포럼에 참석했다. 상하이포럼은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해 전 세계 학자 400여 명이 모여 정치, 경제, 사회, 환경 등의 이슈를 논의하는 포럼으로 올해로 8년째다. 다양한 세션 가운데 싱크탱크 대담 세션에 참여했다. ‘새로운 글로벌 기회, 새로운 리더십, 새로운 책임, 새로운 정책’을 주제로 동아시아의 미래를 전망하는 세션이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상하이국제문제연구원, 일본종합연구원의 국제전략연구소, 러시아국제전략연구원 등 세계적 싱크탱크의 학자 및 전략가들과 함께 열띤 원탁토론을 벌였다. 이야기는 공식 회의뿐만 아니라 휴식시간이나 만찬자리까지 이어져 각국 오피니언 리더들의 속내를 읽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공식적 논의는 러시아 학자가 표현했듯 모두 ‘적당한 낙관론(moderate optimism)’으로 수렴됐다. 중국 학자는 시진핑 체제의 외교정책은 ‘평화 지향적 힘(peace oriented power)’을 추구한다며 평화를 강조했다. 하지만 일본에 대한 비판의 발톱은 감추지 않았고, 힘의 논리를 평화라는 말로 포장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일본의 전직 고위 외교관은 일본의 정치극우화에 대한 비판을 요령 있게 피해 나갔다. 아베 신조 총리는 극우가 아니라 현실주의자여서 많은 국민이 인정하는 무라야마 담화를 어느 시점에서는 받아들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한중일 간 다층적 지식인 대화와 동아시아 시장 통합을 위해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이 가세한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의 효용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낙관론은 현실적 위험을 애써 외면하는 것처럼 보였다. 21세기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변화는 문자 그대로 엄청난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새뮤얼 헌팅턴은 어느 사회나 경제성장을 이루면 정치민주화에 대한 욕구가 높아져 정치변동이 일어난다고 갈파했다. 국제정치도 예외가 아니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자리를 차지한 중국은 국제정치에서도 슈퍼 파워를 꿈꾸고 있다. 반대로 세계 경제 2위 자리까지 올라갔다가 출구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일본은 이제 잃어버린 20년을 청산하려고 새롭게 꿈틀거리고 있다.

중국이 국제정치의 슈퍼파워가 되는 데 일조한 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북한이었다. 북한이 없었다면 중국이 경제대국에 걸맞은 국제정치력을 행사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은 국제사회에서 6자회담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북한은 중국의 치마폭에 숨어 벼랑 끝 전술을 펼쳤고, 중국은 북한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슈퍼파워로 자신을 각인시키며 주변국을 이끌었다.

반면에 일본은 고도 경제성장으로 축적된 부를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거품경제의 붕괴로 장기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일본의 대표적 극우 이시하라 신타로 일본유신회 공동대표는 24년 전에 이미 ‘아니요(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을 펴냈다. 미일 안보체제의 틀 안에 안주해 미국의 외교정책만 추종하다가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확보하지 못한 일본을 비판하고 이제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경제적 부를 정치적 힘으로 연결하지 못한 일본의 국제적 위상은 언제나 초라했다. 이처럼 위축된 일본사회에서 최근 아베 정부의 아베노믹스와 우경화 전략은 일본 국민의 마음을 뒤흔들기에 매력적이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축적한 국가의 부를 국가주의 정치지도자들에 의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으로 모두 날려 버렸다. 이후 다이쇼(大正) 민주주의로 회복한 경제는 군인들의 만주 진출과 태평양전쟁으로 일본을 다시 빈털터리로 만들었다. 패전 후 고도 경제성장으로 축적한 부는 플라자합의 이후 엔화 강세 현상으로 세계 최고 부국으로 발돋움하는 환상에 빠져 있다가 거품경제의 붕괴로 20년 이상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있다. 이제 다시 우경화 전략으로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일본 정치인들의 행보를 우려의 눈으로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최근 동아시아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지각변동 조짐은 심상치 않다. 일본은 한국뿐 아니라 러시아, 중국과도 영유권 분쟁을 조장하고, 역사왜곡 망언, 재무장을 위한 헌법 개정 시도 등으로 국가주의를 부활시키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자원외교를 앞세운 아세안, 아프리카, 중남미에 대한 영향력 강화,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일본과의 영토분쟁, 주요 2개국(G2)으로서 미국과 대등한 군사외교적 지위 확보 등을 통해 동아시아에서 평화로 포장한 힘의 논리를 은근히 과시하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북한에서도 새로운 정권이 출범했다. 앞으로 몇 년간 새로운 지도자들이 동아시아 미래의 초석을 놓을 것이다. 그런 시점이기에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적 역량에 거는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염재호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jaehoyeom@iclou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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