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알다시피 박근혜 대통령은 같이 사는 가족이 없다. 퇴근 후 가족과 대화하거나 주말에 여행을 가거나 집안일을 하거나 대소사를 챙기거나 이런 일상적인 일에서 대통령은 자유롭다. 그 자유로운 시간에도 일을 하기에 측근들은 “대통령의 24시간은 우리보다 길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15일 언론사 정치부장단과의 만찬에서 “일과 후 시간에 대통령은 정신없이 바빠서는 안 되고 큰 구상도 하고 나라의 방향을 심사숙고하고 각계와 이야기도 나눠야 한다”면서도 “지금까지는 일과 이후에 뭘 하느냐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바쁘게 보내왔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뭐가 그리 바쁠까.
“대통령 비서 역할을 하는 부속실이 불이 날 거다.”
전 정권의 청와대 부속실에서 근무했던 이가 최근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는 “정권 초반에는 여기저기서 보고서와 일정 요청이 부속실로 쇄도하고 모두가 대통령의 입만 쳐다볼 것”이라고도 했다.
박 대통령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부속실이 불이 난다는 건 청와대 내부의 이야기다. 각 수석실은 경쟁적으로 보고서를 올리고, 연일 터지는 현안 보고서, 대통령 지시사항에 대한 각 부처와 수석실의 진행 보고, 게다가 대통령 지인들이 외곽에서 보내오는 보고서까지…. 청와대 내부에서도 “대통령이 부속실로 올라오는 보고서를 다 읽다가는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라고 말할 정도다.
특히 박 대통령은 각종 보고서를 꼼꼼히 읽는다. 각종 회의나 주요 정책 발표 전에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미리 보고서를 완전히 숙지한다. 지인들이 보내는 보고서나 편지도 다 챙긴다. 그만큼 시간이 더 필요하다.
보고서들을 다 읽다 보니 챙겨야 할 것도 많아지는 건 당연지사다. 주요 회의 때 박 대통령의 발언은 1만 자가 넘는 경우가 많다. ‘깨알 리더십’ ‘디테일 리더십’ ‘만기친람 리더십’이라는 언론 평가도 여기서 나온다. 세세한 현안에 대해 반복하는 지시 속에는 본인이 챙기는 만큼 부처의 속도가 따라주지 못하는 데 대한 답답함도 느껴진다.
정부 출범한 지 곧 100일이다. 대통령은 아직 지방 방문을 시작도 못했다. 대국민 기자회견도, 국회 방문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국민과 만나는 외부 행사가 역대 대통령보다 훨씬 적은 편이라 대통령 경호실이 편하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대통령은 이제 보고서의 늪에서 벗어나 국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은 그동안 공무원들에게 대부분 전파된 만큼 공무원을 향한 지시보다는 국민의 어려움을 현장에서 챙기는 모습이 필요하다. 박 대통령은 평소에 “나만큼 현장을 많이 다닌 정치인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큰 자랑으로 여겼다. ‘선거의 여왕’의 힘은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현장 속에서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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