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욕을 먹어도 쌀 파렴치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일이 글로벌 인터넷쇼핑몰에선 한국인 이용자 사이에 끊임없이 벌어지는 모양이다. 한 사이트에 들르니 운영사로부터는 거래계좌를 철폐당하고 판매자로부터는 소송까지 당한 한국인들의 하소연이 여럿 올라와 있었다.
물건을 사고도 값을 지불하지 않는 것은 불공정거래행위다. 따라서 그런 구매자의 계좌철폐는 당연한 조치다. 개중에는 가명으로 계좌를 열면 되지 않겠느냐고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전자상거래는 그걸 허용할 만큼 허술하지 않다. 신용카드를 등록시킨 후 거래하므로 들통 나기란 시간문제다. 게다가 약관위반이라 대가도 혹독하다. 결제금이 판매자에게 전달되지 않는 건 물론이고 되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사이버공간의 신속 편리한 국제전자상거래인 만큼 글로벌 스탠더드의 공정거래 의식은 이용의 필수전제다.
물건을 사고도 지불하지 않는 과정은 이렇다. 욕심나는 물건이다 보니 다 팔리기 전에 잡아두려고 구매확정 버튼을 누른다. 그러다 더 맘에 드는 게 보이면 다시 똑같이 사두는데 종국엔 그중 하나만 지불할 뿐 나머지는 팽개치는 것이다. ‘구매는 해도 물건은 가져오지 않았으니 알아서 하겠지’라는 식이다. 하지만 판매자는 황당할 수밖에 없다. 구매취소라는 의사를 전달하지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돈을 보내지 않으니. 그 경우 판매자는 금전적 손해까지 입는다. 그 물건을 다시 쇼핑몰에 올리려면 판매수수료를 내야 해서다. 그래서 가끔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국제소송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신용불량자의 고통. 직접 받아보지 않고는 그게 얼마나 큰지 알 수 없다는 게 경험자의 전언이다. 글로벌 쇼핑몰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구매 불이행으로 제재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그게 얼마나 큰 잘못인지를 깨닫고는 뒤늦게 후회하며 구제를 하소연하는 글이 오른 걸 보면 말이다. 그럼에도 그런 난맥상이 끊이지 않는 이유. 왜? 무엇 때문에? 그리고 유독 한국인에게 이리도 많은 것인지. 나는 그 원인을 느슨한 법률의식에서 찾는다. 법과 규칙, 규정 준수에 앞서 의식을 지배하는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식의 온정주의와 ‘뭐 그럴 수도 있지…’라는 적당주의가 그것이다.
나도 한국 사람인 만큼 그런 면에서 예외일 수 없다. 그래서 외국에서 가끔 난감한 상황에 처한다. 한번은 미국인 친구에게 8개월쯤 사용기한이 남은 주립공원패스(무기명)를 선물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반응에 뜨악해졌다. 이걸 어떻게 자신이 쓸 수 있느냐는 것인데 네가 지불해 획득한 네 권리니까 자기에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게 요지였다. 급차선 변경을 차량 끼어들기 행위로 지탄하는 미국 운전자의 시각도 같은 맥락이다. 도로전방은 안전하게 달릴 권리가 확보된 내 공간이므로 침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양보가 없는 한 그건 권리침해라는 것인데 그런데서 시작된 그들의 양보문화는 그런 철저한 권리의식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런 사회의 잣대와 문화로 볼 때 구매 불이행은 당연히 제재 받을 나쁜 행동이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사건도 이런 시각에서 봐야 한다. 이건 사건 초기 이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자세―경찰에 가해자로 신고된 공무원을 한국에 보내기로 한 판단―를 두고 하는 말이다. 시쳇말로 ‘일단 튀고 보자’는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도피만능심리가 아니라면 과연 이런 판단이 가능했을지….
거기엔 이런 생각도 깔려 있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대통령을 수행 중인 정부 대변인인 만큼 귀국시켜 미국에 없으면 적당히 유야무야 될지 모른다는 ‘특별대접’에 대한 기대감이다. 물건값을 지불 않고도 적당히 뭉개면 제 풀에 꺾여 포기하리라는 불량구매자의 몰염치와 상통할지 모를 그런….
이 부분에 대해선 자라나는 세대가 혹시라도 이런 파행과 위선에 익숙해질까 두려워 정답을 밝히고자 한다. 그때 청와대가 가장 먼저 했어야 할 일은 변호사를 선정해주고 피의자가 함께 스스로 경찰조사를 받도록 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미국에선 중고교생도 내놓을 답이라 보는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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