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분야에 문외한인가. 그래도 ‘네이처’라는 국제학술지 이름은 들어봤을 것이다. ‘사이언스’도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2005년 큰 파문을 불렀던 황우석 교수의 인간배아줄기세포 논문이 실렸던 학술지다.
이 두 학술지에 ‘셀’지를 합쳐 3대 과학학술지라 부른다. 과학자들에게는 ‘꿈의 저널’이다. 이 학술지 가운데 한 곳에만 논문을 올려도 학문적 역량을 인정받기 때문이다.
의학자들에게는 이들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는 학술지가 있다. 바로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이다. 3대 학술지에는 기초의·과학 논문이 실리는 반면에 NEJM에는 임상의학 논문이 주로 게재된다.
국제학술지의 권위를 평가하는 기준 가운데 인용지수(IF·Impact Factor)가 있다. 그 학술지에 실린 논문이 다른 곳에 얼마나 인용되고 있는지를 점수화한 것이다. 2011년을 기준으로 NEJM의 인용지수는 53.298이다. 네이처(36.280), 셀(32.403), 사이언스(31.201)를 크게 앞질렀다. 이러니 의사들 사이에 “NEJM에 논문이 실리는 건 가문의 영광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도는 게 이상하지 않다.
2011년 11월 NEJM에 한 편의 논문이 실렸다. 중국 의사 50여 명이 공동으로 작업했다. 연구진은 2009년 이후 중국 6개성(랴오닝 산둥 허난 후베이 장쑤 안후이 성)에서 급성 고열 증세가 있는 환자들을 조사했다. 혈액 샘플을 확보해 정밀조사를 벌였다. 171명의 환자에게서 바이러스 감염 사실을 확인했다.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이란 질병이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이 논문은 국제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중국의 풍토병일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게다가 야생 곤충이나 동물이 사람에게 질병을 옮기는 것 또한 생소하지 않다. 중세 유럽을 공포로 내몰았던 흑사병은 쥐가 인간에게 옮긴 질병이다. 매년 예방백신을 접종하는 뇌염은 모기가 옮긴다.
올 1월 일본에서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야생 진드기에 감염된 사례가 확인됐다. 한국에서도 5월 들어 SFTS 사망자가 나타났다. 비로소 이 논문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만 50여 편의 후속 논문이 쏟아졌다.
야생 진드기의 일종인 작은소참진드기가 고열을 유발하는 ‘플레보 바이러스’를 인간에게 옮겨 SFTS가 생긴다는 게 확인됐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왜 이 진드기가 플레보 바이러스를 인간에게 옮기는지, 플레보 바이러스는 왜 그렇게 사람을 공격하는지에 대해서는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질병의 역사가 짧기에 항바이러스제도 당장은 개발이 어렵다.
이런 점 때문에 공포심이 커지고 있다. 일부 언론은 ‘살인 진드기’란 표현을 써가며 이 공포심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옳지 않다. 모든 야생 진드기가 이 바이러스를 옮기지는 않는다. 건강한 사람은 바이러스를 지닌 진드기에게 물려도 모두 병에 걸리지 않는다.
1976년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과 수단에서 원인 모를 출혈열이 발생했다. 치사율은 무려 88%에 육박했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원인이었다. 이 바이러스의 최초 숙주가 원숭이인지 박쥐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개발과 환경파괴로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높다.
에이즈 또한 원래는 아프리카 침팬지들이 걸리는 ‘동물의 병’이었고, 조류인플루엔자나 돼지인플루엔자도 사람과는 무관한 질병이었다. 환경파괴와 집단사육이 바이러스의 돌연변이에 일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학자는 플레보 바이러스 또한 이런 원리로 인간을 공격하는 것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바이러스를 옮기는 진드기가 아니라 바이러스의 독성을 증가시킨 인간이 ‘주범’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자연과 공존하려는 인간의 노력만이 해법인데…. 억측일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