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훈상]경찰만 몰랐던 李회장 자택?… 중부경찰서는 CJ보호署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9일 03시 00분


박훈상 사회부 기자
박훈상 사회부 기자
‘서울 중부경찰서가 CJ경찰서인가?’

경찰이 이재현 CJ그룹 회장 빌라 절도미수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취재하면서 기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다. 경찰은 27일 “22일 발생한 사건 장소는 이 회장 집이 아니다”고 했다가 10여 분 만에 “맞다”고 번복했다. 경찰의 말 바꾸기는 “비자금 의혹에 휘말린 CJ가 또 한 번 구설에 오르는 일을 경찰이 나서서 막았다”란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정말 이 회장 집에 도둑이 든 걸 몰랐다”는 중부경찰서 해명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해 봤다. 22일 오후 10시경 조모 씨(67)는 서울 중구 장충동 이 회장 빌라에 침입했다. 조 씨는 “술을 마셨더니 옛날에 절도했던 기억이 나 장충동을 찾았다가 낮은 철문이 보여 뛰어넘었다”고 했다. 담을 넘은 조 씨는 곧 빌라 경비원에게 발각돼 옆집 담장을 넘다가 5m 아래로 추락해 검거됐다.

경찰의 해명에 따르면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조 씨가 침입한 집이 이 회장 빌라인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조 씨가 추락한 빌라 입구에는 ‘OO레지던스’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어 행인도 누구나 이 빌라 이름을 알 수 있었지만 경찰 보고서에는 엉뚱하게 ‘××레지던스’라고 기재됐다. ‘××레지던스’라는 이름의 건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찰은 피해자 이름을 집주인인 이 회장 대신 경비원 이름을 적어 놨다. 조 씨가 추락한 이 회장 집 옆 빌라의 지번주소는 △△6-1번지다. 하지만 경찰은 △△7번지라고 엉뚱한 주소를 적었다. 경찰의 허술한 대처인지 ‘CJ 감춰주기’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대목이다.

사건이 알려진 27일 오후 2시경. 김도열 중부서 형사과장은 언론의 확인 요청이 들어오자 “이 회장 집이 아니다. 이 회장 집 절도 보도는 오보”라고 기자들에게 알렸다. 그는 나중에 거짓말이 문제되자 “장충파출소에 물어보니까 아니라고 하길래 언론에도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과장은 “파출소에서 충분히 파악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거짓말한 꼴이 됐다”며 “일부러 이 회장 집을 감출 이유가 없다”고 28일 재차 해명했다.

경찰이 몰랐다던 이 회장 집은 장충파출소와 불과 300여 m 떨어져 있다. 빌라촌에는 이 회장뿐 아니라 회장 가족도 살고 CJ경영연구소도 들어서 있다. 동네 사람들도 다 안다는 이 회장 집을 하필 경찰만 몰랐다고 강변하니 ‘중부서는 CJ경찰서’란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이상한가?

박훈상 사회부 기자 tigermask@donga.com
#중부경찰서#CJ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