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아까시 향기

난생 처음 꽃씨를 심었다.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씨앗을 심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생명을 돌본다는 것에 지레 겁을 먹고 애완동물을 키운다든지 꽃을 가꾸는 일을 사양했다. 그동안 내게로 와서 죽은 꽃나무가 부지기수여서 화분을 선물 받을 때마다 속으로 혀를 찬다.

“에고, 하필이면 내게 오다니 불쌍해서 어쩔꼬!”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탓에 번번이 말라죽어서 빈 화분을 내다버려야 하는 게 은근히 스트레스였다.

그러나 너무 예뻐서 버리지 못한 화분이 하나 있다. 그 화분을 볼 때마다 뭘 심을까 궁리했는데 마침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에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봉투를 열어 보니 정성이 담긴 안부편지와 벤트리옥잠, 대만나리, 털머위 꽃씨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꽃의 이름과 사진, 파종하는 법을 알려주는 친절한 안내문도 있었다.

3월에 처음 가본 아름다운 천리포수목원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조연환 수목원장으로부터 재미있고 유익한 나무 이야기를 들었다. 40년을 나무와 함께 살아온 그분은 농업고등학교 졸업 후 산림청의 가장 말단직인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하여 산림청장에 오른, ‘꿈은 이루어진다’의 표본이다.

그분은 나무를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나무를 알고 사랑해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면 나무의 이름이라도 제대로 알자는 것. 초여름을 향기로 가득 채우는 아카시아의 정확한 이름이 아까시라는 걸 그날에야 알았다.

아카시아는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이고 우리나라에서 아카시아라고 부르는 나무는 ‘아까시’라는 것이다. 이름이 잘못 알려졌을 뿐 아니라 왕성한 번식력으로 산림을 망가뜨린다고 눈총을 받는 아까시 나무는 사실은 고급목재로 쓰이는 쓸모 있는 나무인데 억울하게 미움을 받고 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알고 보면, 쓸모없는 사람 없듯이 쓸모없는 나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굳어버린 탓에 아카시아도 통용어로 허락되었다는 것. 우리나라에서 아까시는 두 개의 이름을 갖게 된 셈이다. ‘아까시’라고 쓰면 많은 사람이 아카시아의 오자라고 짐작해버린다. 처음부터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나중에 바로잡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꽃씨를 심고 나서 이름표를 붙여주었다. 이름을 제대로 아는 것이 관심의 시작이고 애정의 출발이라는 생각에서다. 날마다 나의 화분에 물을 주며 언제 싹이 나올까 기다리지만 벌써 내 마음에는 사진으로 본 보라색 벤트리옥잠과 하얀 대만나리, 노란 털머위 꽃이 활짝 피었다.

시인은 “꽃이 피기는 힘들어도 지는 건 아주 잠깐”이라고, “꽃이 지기는 쉬워도 잊는 건 영영 한참”이라고 했다. 내게 꽃씨를 선물한 천리포수목원 사람들. 아까시 꽃처럼 향기로운 그 마음을 정녕 한참 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