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세의 C 씨는 퇴직한 후 더 일해 보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돈 없으면 죽을 것 같은’ 공포감 때문이었다. “어디 가서 몸이라도 팔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돈 되는 일을 찾기는 힘들었다. 노인일자리사업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갔지만 월 20만 원 정도의 소득이라는 소리를 듣곤 실망했다. 월 200만 원은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C 씨에게는 어처구니없이 적은 액수였다. 등산을 가려고 해도 평상복이 아닌 ‘아웃도어 웨어’가 필요한 게 서울살이다. C 씨는 아내의 등쌀에 못 이겨 불필요한 지출을 하곤 후회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농촌생활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문득 ‘고향 가서 몸 쓰는 일을 하며 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TV를 자세히 볼수록 농촌이나 산촌에도 분명히 할 일이 있고 가능성도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고향이 과연 나를 받아줄까’라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C 씨는 용기를 냈다. 혼자 운전을 해서 고향에도 가보고 전국 시골 마을도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엄청난 위안을 받았다. 서울 떠나면 큰일 날 것 같았는데 자연은 C 씨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서 밥도 많이 얻어먹었다. ‘어떻게든 굶어죽지는 않겠구나’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C 씨가 혼자라도 고향인 강원 산골로 가겠다고 결심할 무렵, 줄기차게 반대하던 아내의 마음도 바뀌었다. C 씨 부부는 오랜 토론과 여러 번의 답사를 거친 끝에 아내의 친척이 고추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충북의 도농복합지역으로 이사 가기로 합의했다. 살고 있던 연립주택을 팔아 허름한 집이 있는 180평의 땅을 샀다. 미혼인 아들한테는 오피스텔을 하나 사주면서 ‘앞으로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는다’는 독립선언도 받아냈다. 그러고도 1억여 원이 남았다. 집도 약간만 손봐서 살고 당분간 새로 짓지 않을 작정이라 돈 들 일도 없었다.
“시골살이가 어떤가”라는 질문에 대해 C 씨는 대단한 결실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만족한다고 했다. 굶어 죽을까 봐 걱정했던 서울생활이 아득하게 느껴지고, 매월 타는 국민연금 70만 원으로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탁 트인 자연 때문인지 마음이 착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요즘 농촌에서도 억대 수입, 억대 연봉을 꿈꾸기도 하는데 나는 그런 ‘대박’은 바라지 않아요. 서울에서 쓰던 생활비의 5분의 1만 쓰면서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해요. 앞으로 마을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려고 궁리 중이죠.”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공개한 소득분배지표(나라별 2009∼2011년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66∼75세 노인의 상대적인 가처분소득이 34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연령대 노인들의 가처분소득 비율은 62%로 OECD 회원국 평균인 90%는 물론 일본의 89%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빈곤한 노인의 비율도 가장 높았다. 우리나라 66∼75세 노인 중 중위(中位)소득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비율은 45.6%로, OECD 국가들의 평균 비율인 11.3%보다 훨씬 높았다.
우리나라 노인의 빈곤문제에 대한 책임은 상당 부분 사회에 있다. 은퇴연령을 늦추고 사회보장제도를 개선하는 등 국가의 개입이 시급하다. 하지만 국가가 나의 빈곤문제를 해결해줄 때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지 않은가. ‘소득을 늘리거나 소비를 줄이기 위한’ 개인 차원의 노력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나는 귀농이나 귀촌이 하나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제로 통계청의 2012년 ‘귀농·귀촌 실태조사’에 의하면, 지난해 전국적으로 1만1220가구(1만9657명)가 귀농해 2년 연속 1만 가구를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전에 비해 10배 증가한 수라고 한다. 특히 40∼50대가 65%나 되어 고령화로 침체된 농업과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고 한다.
은퇴연령도 높고 연금수준도 높은 복지 선진국에서도 연금생활자가 집값과 물가가 싼 지방 도시로 이주하는 게 트렌드다. 이들 나라의 지방정부는 연금생활자를 유치하기 위한 정보 및 서비스 제공, 창의적인 지역 만들기, 지역경제 활성화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C 씨처럼 퇴직 후에 다른 곳에서 살면서 새로운 활력을 얻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도 많이 늘기를 바란다. 물론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 지방의 상황은 여러 모로 미흡하다. 문화적 여건이 열악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할 일도 있다. 당신이 지방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면, 고향 마을의 복지 수준과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보탬이 된다면, 당신의 노후는 훨씬 더 생산적이고 보람찬 것이 되지 않겠는가.
서울 걱정은 하지 마시라. 당신의 부재는 서울의 교통문제와 주택문제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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