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시공사 대표)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이 밝혀졌다. 인터넷언론 뉴스타파에 따르면 전 씨는 자신을 단독 등기이사로 해 2004년 7월 28일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블루아도니스’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세웠다. 자본금 5만 달러짜리로 등록했지만 실제로는 1달러짜리 주식 1주만 발행한 전형적인 종이회사다.
전 씨는 당초 이 회사 이름으로 2004년 9월 22일까지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에 계좌를 만들 계획이었다. 하지만 계좌 개설에 필요한 공증 서류가 버진아일랜드에서 싱가포르로 배송되는 과정에서 분실됐다. 이에 ‘전재국 씨의 은행계좌에 있던 돈이 모두 잠겼고 전 씨가 진노했다’는 내용의 e메일도 발견됐다고 한다. 전 씨가 모종의 계좌에 거액의 비자금을 갖고 있었으며, 이를 새로운 비밀계좌로 급히 옮길 필요가 생겼음을 추정케 하는 대목이다.
페이퍼컴퍼니의 설립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그러나 출판업체 ‘시공사’를 경영하는 전 씨가 무슨 용도로 페이퍼컴퍼니를 세웠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기 5개월 전인 2004년 2월은 그의 동생 재용 씨에 대한 검찰 수사에서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중 73억 원이 재용 씨에게 흘러들어간 사실이 확인된 시점이다. 이런 정황 때문에 재국 씨의 페이퍼컴퍼니는 전 전 대통령의 불법 비자금과 연결됐을 개연성이 있다고 보는게 자연스럽다.
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2000억 원대 비자금을 축재한 혐의로 1997년 대법원에서 추징금 2205억 원을 선고받았으나 현재 1672억 원을 내지 않고 있다. 그는 2003년 “예금 29만 원이 전 재산”이라고 했지만 이듬해 숨겨 뒀던 서울 강남의 땅 51평이 발견돼 압류됐다. 검찰은 최근 그의 은닉 재산을 찾아내 미납 추징금을 받아내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전담팀을 꾸렸다. 하지만 10월 10일까지 은닉 재산을 찾아내지 못하면 시효가 완성돼 더이상 추징금을 받아낼 방법이 없다.
대통령이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챙기던 잘못된 역사를 그냥 덮고 갈 순 없다. 검찰과 국세청은 페이퍼컴퍼니의 용도가 무엇인지, 입금하려 했던 돈은 어디에 있던 무슨 돈인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 그 전에 전 씨 부자가 스스로 고해하는 게 옳다. 숨겨 둔 재산이 있다면 모두 내놓아야 한다. 그게 국민에게 속죄하는 길이며 예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