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114 성희롱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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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상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친절한 표정과 몸짓으로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근로자들이 있다. 이른바 ‘감정노동자’들이다. 라면을 제대로 끓이지 못했다는 이유로 대한항공 여승무원이 포스코 자회사 임원에게 폭행을 당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감정노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해외 출장을 떠나는 남편에게 아내들은 “컵라면은 직접 끓여 먹으라”고 조언 아닌 조언을 한다. 캐디를 상대로 짙은 농담을 던지던 골프장 고객들도 요즘 입조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114, 카드회사, 콜센터 등에서 근무하는 전화안내원과 상담원들은 감정노동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이다. 서비스에 불만이 있다며 장시간 욕설을 퍼붓는 고객도 있고, 늦은 밤에는 술 취한 남성들이 다양한 하소연을 늘어놓기도 한다. 성희롱도 종종 벌어진다. “뽀뽀하자”거나 “만나 달라”고 조르는 것은 그나마 약과이고, 노골적으로 신음소리를 내기도 한다. 114의 경우 한 달 평균 1700여 건 정도 되는 악성 고객 중 약 5%가 이런 성희롱 고객이다.

▷114 운영 회사인 ktcs는 앞으로 성희롱하는 고객에게 법적 대응을 하기로 했다. 성희롱은 지금까지 피해자가 직접 신고해야 하는 친고죄여서 회사가 나서기 어려웠으나 친고죄 조항이 사라진 새로운 성폭력특별법이 19일 시행되면 회사도 고발할 수 있다. 전화안내원이 서비스 직종이라는 점을 악용해 성희롱을 일삼던 ‘찌질남’들은 이제 법 무서운 줄을 알아야 할 것 같다.

▷카드회사인 현대카드는 악성 고객에 대한 전화 응대를 중단해 전체 고객의 만족도를 높였다. 성희롱 고객의 전화를 끊어버릴 수 있게 해주자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고객서비스의 질도 덩달아 좋아졌다는 것이다. 소(小)를 버리고 대(大)를 택한 것이다. 현대카드가 2012년 2월부터 1년 동안 성희롱이나 욕설을 하는 고객에게 먼저 전화를 끊은 경우는 월평균 31건. 이 기간 상담원 이직률은 4.2%로 2010년 14.9%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성희롱을 묵과하지 않는 것은 이제 직원의 인권 보호를 넘어 기업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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