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희균]기간제 딜레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4일 03시 00분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기간제 교사 A 씨는 교원 관련 뉴스를 볼 때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된 기분이다.

서울의 한 여대 수학과에서 교직을 이수한 A 씨는 정교사 2급 자격증이 있다. 대학 졸업 직후 결혼하고 아이를 낳느라 임용고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중학교 몇 곳을 돌며 기간제 교사로 일한 지 4년. 출산휴가를 떠난 정교사를 대신해 석 달간 근무한 적도 있고 정교사들이 기피하는 담임을 울며 겨자 먹기로 2년간 한 적도 있다.

일은 정교사보다 더 많이 하지만 성과급 시즌이면 빈 주머니에 소외감만 담겼다. 계약을 연장하고 싶은 학교에서는 다른 교사의 잡무까지 처리했다. 유독 기간제 교사를 홀대하던 한 학교에서는 급식시간에도 무시를 당한 기억이 남아 있다.

기간제 교사의 눈높이에서 A 씨는 법정 교원확보율을 채우지 않고 기간제 교사를 남발하는 교육부와 학교가 원망스럽다. 기간제 교사의 처우 개선과 권익 보호가 절실하다고 되뇐다.

하지만 여섯 살 딸을 둔 엄마의 눈높이에서 교원 관련 뉴스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요즘 학부모들 사이에 공분을 일으키는 이른바 ‘일베충 교사’, 4월 여고생 앞에서 자위행위를 하다 해고된 서울 모 고교의 기간제 교사 같은 사례 때문이다. 일베충 교사란 ‘일간베스트저장소’ 사이트에 각종 성매매 경험담을 올리고 초등 여학생을 성적 대상으로 일컫는 ‘로린이’라 부른 자칭 초등교사를 가리킨다.

A 씨는 ‘우리 딸이 초등학교에 가서 이런 놈에게 걸리면 어쩌지? 기간제 교사를 어떻게 믿지?’라는 생각이 들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기간제 교사인 자신부터 이리 생각하니 일반 학부모들은 어떨까 싶어서 말이다.

대다수의 고통과 일부의 물의가 공존하는 사이에 기간제 교사는 어느새 3만9974명(2012년 기준)이 됐다. 선량한 임용 대기자 상당수는 학교에서 을(乙)이 된 채 잡무를 떠맡고 이곳저곳을 떠돈다. 일부 기간제 교사의 파렴치한 행위로 사회적 인식까지 나빠지니 이중고다.

그런데 고통도, 물의도 현실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다. 교육당국이 정교사 수를 늘리지 않고 땜질식 인력운용을 하는 탓이다. 교육부는 기간제 교사의 자질 문제가 자꾸 불거지자 뒤늦게 기간제 교사 인력풀 제도를 운용하겠다고 했다. 유용한 정책이긴 하나 임시방편이긴 마찬가지다.

다시 일베충 교사의 사례를 보자. 발 빠른 누리꾼 수사대는 그가 대구교대를 졸업하고 그 지역 모 초등학교에서 기간제로 일한다고 밝혀냈다. 하지만 해당 교육청은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는다며 미온적으로 대처한다. 교육부는 임용 대기 중이니 교육청이 조치할 거라며 팔짱을 끼고 있다. 그가 정교사였다면 이런 대응이 나왔을까?

교육당국이 기간제 교사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면 백번 양보해 이들에 대한 관리 감독이라도 책임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A 씨처럼 정체성 문제로 힘겨워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날 거다. 기간제 교사가 무려 4만 명이니 말이다.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foryou@donga.com
#기간제 교사#정교사#일베충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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