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6일 중국 허난(河南) 성 안양(安陽) 시에 건축면적 2만2700m²(약 6878평) 규모의 문자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안양 시는 세계 최초문자에 해당하는 갑골문이 출토된 은허지역이라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중국공산당 상임위원 리창춘(李長春)이 개관 선포를, 전 국가주석 장쩌민(江澤民)이 ‘중국문자박물관’이라는 관명을 썼다. 개관 현장에는 성대한 축하의식과 중국문자발전포럼, 당대 중국 600인 서예가작품전, 4D영상 ‘갑골문’ 등이 선을 보였다. 중국 정부는 중국민족의 가장 중요한 발명품인 중국문자와 관련된 문화유물의 보존과 전시, 연구를 통해 중국문화를 전파하고 중국인의 자존감을 높이려는 뜻으로 안양 시에 국립비영리문화기관인 문자박물관을 건립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도 8월이면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용지 안에 한글박물관이 들어선다. 한글박물관은 내년 개관을 목표로 현재까지 기증 7450여 점, 공개 구입 1176점을 구비했다. 한글박물관은 다양한 한글 문화재를 수집 정리 분류해서 전시하는 전시장과 수장고 기능에서 나아가 우리의 문자문화를 위해 해야 할 일을 찾아 연구하는 연구소의 역할도 겸해야 한다. 또한 대부분의 박물관이 과거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데 비해 한글박물관은 한글의 과거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가 다함께 공존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훈민정음 창제는 물론이고 그 이전과 이후의 문자생활을 망라해 디지털 아카이브화하여 누구나 그곳에 가면 한글에 관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이에 발맞춰 지난달 9일 한글박물관 개관 준비를 위한 위원회가 발족되었다.
이 위원회에는 한글과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모였다. ‘한글’은 으레 국어학자들의 전유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한글은 단순히 말을 표기하는 문자의 기능을 뛰어넘어 우리의 모든 것을 담는 문화적 기능을 가지고 있어, 오늘날의 한글은 다양한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국어학자는 한글을 의사소통의 도구로 인식할 뿐이지만, 국문학자는 작가의 심상을 전달하는 도구로 접근한다. 서예가는 한글의 선을 통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도구로, 디자이너는 이미지 전달의 도구로 한글을 생각한다. 출판계는 한글 활자를 통해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되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감성까지 동시에 전달하고자 관심을 갖는다. 정보학 분야에서는 한글을 0과 1이라는 2진수가 배열된 코드로 인식하고, 이를 폰트라고 하는 과정을 거쳐 컴퓨터 화면과 종이 위에 실현시키고자 한다. 심지어 한글과 전혀 상관없다고 여겼던 무용계에서는 선과 율동과 음악을 통해 한글의 아름다움을 재현하기도 한다. 이 분야들은 독립되기보다 ‘한글’이라는 주제 속에서 유기적으로 조화되어야 할 것이다.
요컨대 한글은 모든 분야를 종합하고 융합하는 문화적 요소이므로 언어학적인 측면뿐 아니라 문화적인 시각으로 접근하여 이를 통해 우리 문화를 재창조하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을 축적해야 하며, 시공간으로는 과거, 현재, 미래와 전 세계를 담아야 할 것이다. 한글박물관이 원대한 뜻을 품고 국민들이 염원하는 박물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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