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전 부품의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것으로 밝혀진 새한티이피의 대주주는 원전 부품의 승인 권한을 갖고 있는 한국전력기술(한전기술) 출신이다. 한전기술은 승인 권한을 무기로 새한티이피에 부품 검증을 맡기도록 부품 제조업체에 압력을 행사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과 원전 설계와 부품 감리업체인 한전기술, 시험검증기관 출신자들의 거대한 이권 사슬에 안전이 뒷전으로 밀려났다.
원자력 업계에 ‘원전 마피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특정 학맥의 원자력 기술자들은 배타적인 기술정보와 보안을 방패로 한수원과 한전기술, 제조업체, 시험기관은 물론이고 원자력 감시기관 곳곳에 포진해 끈끈한 유착 관계를 형성해 왔다. 이런 폐쇄적인 인력 구조는 부패와 비리를 부를 수밖에 없다. 원전 부품 발주사나 제조업체 대표가 부품 검증기관에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에서 공정하고 투명한 시험 결과가 나올 리 없다. 한전기술과 납품업체, 시험검증기관이 한통속이 되어 시험 성적을 위조하게 되면 속수무책이다. 이번 비리도 내부 고발자가 없었더라면 영원히 묻혔을지 모른다.
이번 사건은 불량 부품 사용으로 지난해 11월 가동을 일시 중단했던 영광 5, 6호기 사건과는 성격이 다르다. 영광 5, 6호기는 불량 부품보다도 서류를 위조했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였다. 수량이 많기는 했으나 퓨즈 등 간단한 부품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번에 위조 대상이 된 제어 케이블은 원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새나가지 않도록 안전 설비에 차단 신호를 전달하는 핵심 부품이다. 원자로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방사능 누출 같은 끔찍한 재앙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국내 원자력 발전소 23기 가운데 10기의 가동이 중단됨에 따라 전력 성수기에 전력대란이 걱정되지만 안전을 포기할 수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밝힌 대로 원전 분야에 고착돼 있는 비리의 사슬 구조를 원천적으로 끊어내는 일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원전 비리가 터질 때마다 한수원은 개혁을 다짐했으나 그동안 달라진 것이 없다. 상호 견제와 감시가 가능하도록 원전 운영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전력 소비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이틀째 1단계 전력 경보가 발령됐다. 사정기관은 ‘원전 마피아’의 환부를 도려내고, 발전업계는 비상한 각오로 전력 생산과 관리에 임해야 한다. 국민은 솔선해서 절전에 동참해야 그나마 덜 더운 여름을 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