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와이대에서 열린 미래학 워크숍에 3주간 참여했다. 3일 하와이에서의 마지막 날은 와이키키 해변의 모아나 서프라이더 호텔에서 거리 쪽으로 난 로비 발코니의 흔들의자에 앉아 보냈다. 로비 안쪽으로부터는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고, 호텔은 측면에서 중앙으로 접근하도록 되어 있어 드나드는 사람은 모두 내 앞으로 지나다녔다. 책을 읽다가 사람 구경을 하다가 졸다가 그렇게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이틀 전 워크숍 졸업 만찬 때 존 스위니 카피올라니대 교수의 얘기로는 그의 부모님이 1970년대 이곳에 왔을 때 와이키키 해변에 핑크색 로열 하와이언 호텔과 흰색 모아나 서프라이더 호텔 2개만 있었다고 한다. 와이키키의 모든 호텔은 외부인에게 개방돼 있다. 하지만 개방성에는 차이가 있어 로열 하와이언 호텔은 외부인이 지나다니기에 불편하다. 이후 지어진 셰러턴 와이키키, 힐턴 하와이언 등도 이 호텔을 모방해 외부인이 지나다니기에 불편하게 만들어 놓았다. 모아나 서프라이더 호텔만이 거리의 활기를 그대로 호텔로 끌어들여 해변으로 전달하는 진정한 개방적 구조를 갖고 있다.
이 호텔에선 투숙객도 아닌 사람이 로비 발코니의 몇 안 되는 흔들의자 중 하나를 차지하고 반나절을 앉아 있어도 누구 하나 눈치를 주지 않았다. 10달러(팁 포함 12달러)면 와인도 한잔 시켜 먹을 수 있다. 로비에서 재즈음악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는 지나다니는 여성들에게 장난스러운 추파를 보내고 등 뒤의 층계를 오르는 투숙객들에게는 얼굴을 돌려 어디서 왔느냐고 일일이 물어보기를 잊지 않는다. 와이키키의 옛 모습이 아직도 남아 있는 곳이다.
사람 구경하기엔 여기보다 좋은 곳은 없을 듯하다. 어느 나라에서나 초혼 연령이 높아지는지 나이가 들어 보이는 신혼부부도 꽤 많고 은퇴한 연령의 노부부, 젊은 남녀 서퍼, ‘맘마미아’처럼 자기들끼리만 놀러온 듯한 중년 여성 그룹 등 다양하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서양인만큼이나 많은 아시아인 관광객이 드나든다는 점이다.
관광객만 아시아인이 많은 게 아니다. 하와이 주민도 아시아계가 38.6%로, 백인 24.7%보다 많다. 백인에 흑인과 히스패닉을 다 합쳐야 아시아계와 비슷해진다. 혼혈도 23.6%나 된다.
하와이는 인종적으로 문화적으로 서양인과 아시아인 중 누가 주류라고 말하기 어려운 곳이다. 어디서나 아시아계가 넘쳐난다. 정계나 재계도 아시아계의 힘이 크다. 상점이나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다. 동서양의 상이한 요소들이 창의적으로 섞이고 있다. 일본 벤또에서 유래한 도시락에는 모든 음식이 담겨져 상점에서 팔린다. 한국의 갈비(LA 갈비)는 식당에서 스테이크나 로코모코(하와이식 햄버거스테이크 덮밥)와 나란히 메뉴판을 차지하고 있다. 아시아계 여성들은 서양 여성들만큼이나 활동적이다. 자기 키보다 큰 서핑보드를 들고 나와 깊은 바다로 홀로 헤엄쳐 가는 젊은 여성들과 해변에서 트라이애슬론 수영 연습을 하는 중년 여성들도 드물지 않다.
프랑스에서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백인과 북아프리카계 간의 갈등을 지켜봤다. 북아프리카계는 자긍심을 갖지 못하고 그 열패감을 폭력으로 표출했다. 미국도 동부와 남부에서는 백인과 소수인종 간의 갈등이 여전히 크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캐나다 밴쿠버 등 북미 대륙의 서부로나 와야 그 간격은 줄어들기 시작한다. 바다 건너 하와이에 와서야 융합 비슷한 것이 눈에 보인다.
금세기는 무엇보다도 중국 때문에 아시아의 시대가 될 것이다. 더 많은 서양인들이, 중앙아시아인들이, 아프리카인들이 중국이나 그 주변국가인 한국과 일본으로 몰려올 것이다. 우리도 한편으로 누구에게도 주눅들지 않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누구도 깔보지 않으면서 자신을 열 준비가 돼 있는가. 미래를 연구하는 하와이 체류의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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