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전승훈]쓰시마 해전이 다시 일어난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0일 03시 00분


전승훈 문화부 차장
전승훈 문화부 차장
몇 년 전 일본 쓰시마(對馬) 섬에 갔을 때 한국과 관련한 수많은 신화와 전설, 역사기록과 문화재가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심지어 결혼 안 한 남성을 ‘총각’이라고 부르는 쓰시마의 택시 운전사에게 “총각이 한국말인 줄 아느냐?”고 묻자 깜짝 놀라던 모습이 무척 흥미로웠다.

임진왜란을 비롯해 일본이 조선 침략을 할 때마다 선봉기지는 늘 쓰시마였다. 실제로 해가 진 후 쓰시마의 전망대에 서면 부산 광안대교의 불빛까지 훤히 내다보인다. 척박한 쓰시마에 살던 왜구들의 눈에는 풍요로운 조선의 남해안 일대만 보면 가슴이 뛰었을 것이다. 전망대 부근에는 현재 일본 자위대의 해군기지 시설이 있다.

쓰시마가 세계적인 군사요충지로 떠올랐던 것은 1905년 러일전쟁 때다. 당시 러시아는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확정짓기 위해 북유럽에 주둔하고 있던 발트함대를 동아시아까지 출격시키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러시아 해군은 당시 영일(英日)동맹을 맺고 있던 영국의 방해로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지 못했다. 결국 발트함대는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 아시아까지 오는 장장 6개월간의 항해를 하는 동안 기진맥진하고 만다.

쓰시마의 만세키바시(萬關橋)에 가면 러일전쟁 기념비가 서 있다. 이곳은 쓰시마의 허리를 잘라 대한해협과 쓰시마해협을 통과할 수 있도록 인공적으로 파놓은 운하다.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제독은 함대를 조선의 진해만과 대한해협 쪽에 숨겨두고, 러시아의 발트함대가 쓰시마해협을 통과할 적에 급습해 대승을 거뒀다.

만일 러시아의 발트함대가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지나는 먼 길을 돌아오지 않고, 북극해를 이용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당시 북극해는 빙하로 가득 찬 바다였기 때문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빙하가 녹아 북극해 항로가 열리게 된 요즘이었다면, 러시아의 발트함대는 베링 해협을 지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한 달도 안 돼 도착했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패배했다면, 조선도 일제의 식민지가 되는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듯 북극의 기후변화는 세계 군사력의 판도를 바꿀 만한 대사건이다. 북극해는 반경 5000km 안에 미국, 러시아, 유럽, 중국, 한국 등 산업국가들로 둘러싸인 21세기의 지중해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와 가스가 개발되는 북극은 중동보다 더욱 첨예한 분쟁이 벌어지는 ‘뜨거운 바다’가 될지도 모른다. 이미 러시아와 캐나다는 북극에 군사기지를 설치했고, 미국은 빙하 밑을 통과하는 잠수함을 개발했다.

그러나 얼음으로 지켜온 청정바다 북극은 오염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북극의 미래에 대해 인류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이다. 북극해 연안국들로만 구성된 북극이사회가 지난달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태평양 국가에까지 정식옵서버 자격을 확대한 것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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