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태현]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1일 03시 00분


분단된지 두 세대가 지난 지금 통일의미 갈수록 분열되고 약화
우리의 백년대계 핵심은 통일…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동아시아 공동체 구축하는 통일의 상(像) 정립해 국민과 국제사회의 담론 모아야

김태현 중앙대 교수 국가대전략연구소장
김태현 중앙대 교수 국가대전략연구소장
작년 이맘때 본란에서 필자는 평소 복이 많다고 생각하며 감사한다고 썼다. 농촌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전근대를 경험하고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 과정을 오롯이 지켜봤다. 그 결과 삶의 수준에 있어서 민족사상, 적어도 세종대왕 치세 이후 500년 만의 최고 성세(盛世)에 살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치적 자유, 경제적 풍요, 외교적 인정 등 삶의 여러 측면에서 그렇다.

감사하는 마음의 이면에는 조바심이 있다. 이 성세가 백년 후 후손에까지 이어질 것인가. 그래서 국가와 민족의 백년대계를 준비하자는 뜻에서 ‘국가대전략’ 연구소장을 자임했다.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 굳건히 자리 잡고 후손들이 지금보다 나은 삶을 누리려면 대전략(grand strategy)적 사고와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대한민국 국가대전략의 핵심에 결국 남북통일이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뒤를 돌아볼 때 대한민국이 지금의 성세를 누리게 된 데는 분단된 민족 사이의 치열한 경쟁이 한몫했다. 앞을 내다볼 때 분단은 선진국 문턱에서 허덕이는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도전이기도 하지만, 그것의 극복을 통해 이 시대의 위대한 도전을 완성할 기회이기도 하다. ‘이 나라 살리는 통일,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은 단순한 노랫말이 아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의 통일역량은 갈수록 약화돼 왔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하나는 안의 문제다. 경제력이나 군사력 같은 물질적 역량의 문제가 아니다. 통일을 바라고 대비하는 국민의 여망, 곧 사회적 역량의 문제다. 분단된 지 어언 두 세대. 그 사이 통일은 현실성을 잃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입에 발린 한낱 노랫말이 되고 말았다.

사실 통일이라는 말은 정서적, 규범적,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단어가 됐다. 통일이라면 누구나 나름의 입장이 있고, 그 입장에 따라 사람됨이 평가되기도 한다. 그래서 통일을 이야기하다 자칫 멱살잡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나아가 북한을 축으로 이루어진 정치적 분열구조와 대북정책을 위주로 전개된 정치적 경쟁의 와중에 통일의 의미는 찢어지고 발겨졌다.

요컨대 통일이라는 단어는 하나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는 극도로 다양해졌고 사람마다 그 의미가 달리 부각돼 통일에 대한 온전한 대화가 어려울 지경이 됐다는 것이다. 보수인사가 통일을 말하면 북한의 붕괴를 바란다고 생각한다. 진보인사가 통일을 말하면 북한의 입장에 동조한다고 생각한다. 그 비용을 먼저 생각하여 이 나라 ‘살리는’ 통일이 아니라 ‘망치는’ 통일이라고 하는 사람을 만난 적도 있다.

다른 하나는 밖, 곧 국제적 역량의 문제다. 신장된 국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과 외교력이 크게 상승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분단을 비정상적 상태로 간주하고 그것의 해소를 당연시하는 국제사회의 인식은 오히려 약화된 감이 있다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독일통일이라는 별은 두꺼운 구름층에 가려져 있었다. 한순간 구름이 걷히면서 그 별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별을 잡아챘다.”

1990년 독일통일 당시 서독 외교장관을 지낸 한스디트리히 겐셔의 말이다. 작금의 국제 정세와 한반도 정세를 감안하면 남북통일의 별이 언제 그 모습을 드러내도 놀랄 일이 아니다. 과연 우리는 그 별을 잡아챌 준비가 돼 있는가.

지난 정부에서도 통일 외교, ‘통일 항아리’ 등 통일에 대한 준비를 강조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통일의 상(像)을 정립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국민의, 또 국제사회의 인식이 수렴되는 담론적 차원의 준비다. 그것이 없으면 통일 항아리에 돈이 모이지 않는다. 그것이 없으면 국제사회가 한반도 현안을 논의할 때 왜 한국이 주도적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 납득하지 않는다.

그 요체는 통일의 개념화에 있다. 통일이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대상을 형상화하는 것을 말한다. 베트남, 독일 등 역사적 선례에 경도되거나 과거 특정 정부의 정책에 고착되지 않고 역사의 흐름이 가져올 수 있는 온갖 가능성을 포괄적으로 담을 수 있는 창조적 개념화가 필요하다. 또 남북통일을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동아시아 공동체 구축을 향한 진일보라는, 발상의 확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정부가 내세운 ‘모두가 행복한 통일’이라는 구호는 자못 창의적이다. 우리 국민 모두가 행복하면 통일을 둘러싼 국내적 분열은 없을 것이다. 북한 주민 모두가 행복하다면 통일의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지구공동체의 구성원이 모두 행복하다면 통일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이 단순한 구호를 넘어 구체적 형상으로 국민과 세계인의 마음에 자리 잡을 때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라는 정부의 정책은 추동력을 얻게 될 것이다.

김태현 중앙대 교수 국가대전략연구소장
#통일#대한민국 국가대전략#외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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