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영해]진짜 모피아, 가짜 모피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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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NH농협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한 임종룡 씨(54)는 ‘모피아’다. 재정경제부 증권제도과장 금융정책과장 경제정책국장 등 요직을 거쳤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경제금융비서관과 기획재정부 1차관을 지내고 국무총리실장을 끝으로 2월 옷을 벗었다. 박근혜 청와대는 임 씨에게 빚이 없다. 따라서 임 씨를 낙하산으로 내려보낼 이유도 없다.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이 재경부와 청와대 업무를 꿰고 있는 임 씨만 한 적임자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KB금융지주회장에 내정된 임영록 씨(58)는 경기고-서울대 사대를 졸업해 경기고-서울대 상대(KS)라는 모피아 본류와는 거리가 있다. 재경부 차관보도 정통 KS라인인 조원동 씨(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에게 밀려 4개월 남짓밖에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 말년에 반년가량 재경부 2차관을 지내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자리를 찾지 못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3년 전 KB금융지주 사장이 됐다. 재경부 차관까지 지낸 사람이 고려대 총장 출신인 어윤대 씨를 회장으로 모셨으니 기세등등한 모피아 선배들이 좋게 보지는 않았을 것 같다.

▷어제 공모 신청을 마감한 한국거래소 이사장에 재경부 출신 2명이 지원했다. 세제실장과 국세심판원장 조달청장을 지낸 최경수 씨는 지난 정부에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발탁으로 현대증권 사장을 맡았다. 이철환 씨는 국고국장과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을 지낸 뒤 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을 맡았다. 둘 다 바로 낙하산을 타지 않고 ‘신분세탁’ 과정을 거쳤으니 대놓고 모피아라고 부르기도 뭐하다.

▷NH농협금융지주와 KB금융지주, 한국거래소 모두 정부 지분이 하나도 없다. 낙하산이라고 비난하지만 어디서 내려보내는지가 확실하지 않다. 박근혜정부는 대선캠프 출신 인사를 금융계에 낙하산으로 투하하지 않고 있다. 그 틈을 타 모피아가 득세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모피아가 득세를 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불이익을 당해서도 곤란한 건 아닌지. 어두운 관치(官治)금융 시절 모피아 선배들이 하도 마피아처럼 행세했기 때문에 후배들이 애꿎게 불똥을 맞고 있다. 모피아? 이젠 마피아가 될 수 없는 세상이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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