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무소유 시대]<4>일본 저성장 풍속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4일 03시 00분


부활한 가내수공업 ‘뚝딱뚝딱’… 소비문화도 뜯어고친다

일본에서는 공구를 직접 사서 가구를 제작하거나 수리하는 속칭 ‘DIY 여성’이 늘어나고 있다. 아사히신문 제공
일본에서는 공구를 직접 사서 가구를 제작하거나 수리하는 속칭 ‘DIY 여성’이 늘어나고 있다. 아사히신문 제공
상당수 여성의 피부 관리에 대한 관심은 남자들이 생각하는 그 이상이다. 먹고사는 기본적 욕구와는 좀 떨어져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피부관리실에 가려면 비용이 부담스럽다. 일본에서 오랜 불황기를 거치면서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셀프 에스테’(Self-esth´etique), 즉 스스로 하는 피부관리다. 전문 강사의 지도를 받아가며 스스로 관리를 하는 것이다. ‘셀프 에스테’는 피부 타입을 여러 기구를 사용해 먼저 알아본 후 전문 클렌징 용품으로 얼굴을 닦고 피부관리실에서나 볼 수 있는 스팀기로 모공을 열어 각질을 제거한 뒤 비타민C 투입기로 신경 쓰이는 부분을 계속 집중 관리하는 식이다. 이런 서비스를 피부관리실에서 받으려면 회당 우리 돈으로 10만 원 정도 들지만, 직접 하면 2만 원이면 된다.

그렇다고 싼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비용을 절약하면서 스스로 한다는 약간의 ‘수고’가 더해져야 하는데 여기에 즐거움,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가미되어야 성공 가능성이 높다.

반완제품을 파는 가구회사 이케아(IKEA)가 대표적이다. 이케아 제품들은 조립이 쉽지 않다. 하지만 땀을 흘리며 어찌어찌 완성시키고 나면 성취감이 든다.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는 체험을 통해 고객으로 하여금 즐거움, 기쁨, 보람과 함께 제품에 대한 애착까지 느끼게 한다.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수예전문점 ‘유자와야(Yuzawaya)’의 콘셉트도 스스로 만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물건’이다. 백화점에 진열된 수많은 완성품이 줄 수 없는 기쁨을 주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아예 ‘디아이와이(DIY·Do it yourself) 여성’이란 신조어까지 나왔다. 스스로 집 벽이나 마루를 페인트칠하고 선반이나 작은 장식품을 만드는 것을 즐기는 여성들이다. 공구업체 ‘블랙앤드데커 저팬’이 일반인 남녀 총 3000명을 조사한 결과 여성의 무려 52%가 ‘직접 물건을 만들어 사용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복수 응답)로는 ‘돈을 아낄 수 있어서’(51.3%)도 있었지만 ‘취향에 맞는 물건을 직접 만들 수 있어서’(49.7%) ‘물건 만드는 자체가 흥미로워서’(47.5%)도 큰 이유로 꼽혔다.

이런 여성들을 겨냥해 대형 유통업체 ‘카인즈(CAINZ)’는 12개의 공구를 세트로 구성한 툴 박스, 미니 전동 드라이버 등 지금까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공구를 여성들이 선호하는 디자인과 간단히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상품을 개발해 팔고 있다. 포장지업체 ‘시모지마’는 ‘WRAPPLE’이란 브랜드를 만들어 포장지, 리본, 종이 가방부터 각종 도료, 실 등 수공예 재료를 팔아 인기를 얻고 있다. 판매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워크숍 강의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스스로 해보는 즐거움을 준다.

대형 잡화점 ‘도큐핸즈’는 시부야점 7층에 소비자들이 직접 만든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도 한다. 출품 희망자는 홈페이지에서 응모한 뒤 담당자와 면접까지 한다. 선택되면 상품이 진열되는데 매달 3만∼30만 원의 출점료와 매출의 20%를 판매수수료로 지불한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더 롱 테일(The Long Tail)’의 저자이자 세계적 정보기술(IT) 잡지 ‘와이어드’의 크리스 앤더슨 편집장은 이미 “누구나 직접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 오고 있다”며 가내수공업이 부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황으로 저렴한 물건과 서비스를 찾게 되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개인의 욕망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셀프 산업은 어찌 보면 개인의 욕망을 가장 저렴한 방법으로 달성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임연숙 노무라종합연구소 서울 시니어매니저   
정리=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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