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상봉]코리아 카탈로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4일 03시 00분


박상봉 명지대 교수·독일통일정보연구소장
박상봉 명지대 교수·독일통일정보연구소장
1989년 봄 서독 내독성(우리의 통일부에 해당)에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됐다. 밤베르크대 경제학과 울리히 블룸 교수의 편지로 “통일에 대비하고 있느냐”를 묻는 내용이었다. 정부는 그로부터 9개월 후인 11월 “통일 대비 프로그램이 없다”는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같은 달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다. 블룸은 동독 붕괴를 예언한 유일한 인물이 되었고 통일 후 동독 재건 과정에 참여했다.

이 블룸 교수가 4월 말 한국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한국 정부는 통일에 대비해야 하며 독일 통일의 경험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수차례 방한해 통일부 자문, 각종 세미나와 특강을 해왔다. 4월 28일 독일의 시사주간지 ‘디차이트’는 블룸의 ‘코리아 카탈로그’를 소개했다. 여기에는 독일 통일에서 얻은 아이디어, 교훈, 시행착오 및 경험과 함께 우리 정부가 취해야 할 5가지 실질적 통일 정책이 담겨 있다. △재산권 반환이 아닌 보상을 원칙으로 할 것 △인프라 촉진법을 가동할 것 △북한 기술자 보호 및 활용 △공장 건설 등 직접투자에 중점을 둘 것 △인민군 조직을 활용할 것 등이다.

독일은 동독 재산을 원소유주에게 반환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이 원칙이 투자자들의 발목을 잡았고 기업은 재산권 반환 소송에 휘말렸다. 한국의 경우는 적절한 보상기준을 마련해 투자자에게 편의를 제공해야 하며 도로 철도 등 교통로와 북한의 열악한 인프라 구축에 집중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핵, 항공우주, 군사, 자원 분야의 기술자를 보호하고 북한에 이들을 중심으로 연구산업단지를 세워야 한다. 단순한 거래보다는 북한에 회사를 설립하고 공장을 세우는 직접투자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동독의 기업이 통일 후 서독 공장의 작업장을 연장해 놓은 것과 같아 동서 갈등이 고조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150만 인민군 조직을 해체하기보다 적당한 활용 방안을 찾으라는 것 등이다.

우리 사회의 희박한 통일의식에 대해서는 정치권의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서독인의 가슴에 통일의 피가 끓어오르게 한 것은 헬무트 콜 총리였다. 콜 총리는 “우리가 돈 때문에 통일을 거부한다면 역사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며 애국심을 불러 일으켰다.

최근 여러 전문가가 갑작스러운 북한 붕괴를 말하고 있다. 통일 리더십, 어떠한 암초를 만나더라도 통일의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미래지향적 리더십이 절실하다. 블룸은 ‘코리아 카탈로그’의 존재만으로도 한국은 독일보다 유리하다고 한 것이다. 독일의 시행착오를 투명하게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1991년부터 북한을 연구해온 오스트리아 빈대학 프랑크 박사도 한반도 통일이 독일보다 유리하다고 말한다. 상대적으로 불완전한 사회보장 시스템,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과 함께 중국도 유리한 변수라고 한다. 독일 통일 당시 소련은 지는 해였다. 경기는 침체하고 연방은 해체 위기에 있었다. 거대한 소련 시장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이다. 이에 반해 중국은 뜨는 별이다.

이런 주장들은 통일에 주저했던 우리에게 자신감을 주고 있다. 이제 통일의 부작용을 거론하기보다 희망을 이야기할 시점이다. 많은 문제가 있지만 독일이 통일 후 더 강한 나라가 된 것처럼 한반도의 통일도 축복이 될 것이라는 블룸 교수의 예언에 박수를 보낸다.

박상봉 명지대 교수·독일통일정보연구소장
#독일#북한#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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