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이탈리아에 다녀왔다. 10여 년 만에 찾은 로마제국은 여전히 멋졌다. 도시마다 빼곡한 문화재에 근사한 먹거리들, 청량한 포도밭과 그윽한 올리브 향…. 도떼기시장처럼 사람이 몰려든 바티칸박물관도 관광대국의 위용을 보는 듯해 짐짓 부러웠다.
악명 높은 소매치기도 당하질 않았으니 관광객으로선 만 점짜리 방문. 그런데 왠지 모르게 묘한 이질감이 밀려들었다. 6월이면 땡볕을 자랑했던 날씨가 이상기후 영향으로 영국마냥 변덕스러웠던 탓일까. 돌아오고 나서도 영 시차 적응이 되질 않았다.
해답은 우연히 한 책을 뒤적이다 실마리를 찾았다. 올해 초 발간한 ‘2033 미래 세계사’(휴머니스트)를 보면 유럽을 한 단어로 정의하는 대목이 나온다. “노(老) 대륙.” 그랬다. 이탈리아, 아니 유럽은 늙어 있었다.
현지에서 그런 인상을 받았던 건 딱히 숱하게 보수공사에 들어간 문화재 때문만은 아니다. 솔직히 로마건 피렌체건 가림막에 둘러싸인 건물이 많긴 많았다. 그런데 그거야 어쩔 수 없지 않나. 낡으면 손봐야 하고, 문제 생기면 고쳐야 한다. 아쉽긴 했어도 애정 어린 문화재 사랑으로 봐줄 만했다.
문제는 사람이었다. 어딜 가도 이민자가 넘쳐났다. 아프리카 혹은 인도, 중동 등지에서 온 이들이 거리를 점령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젊었다. 반면 ‘오리지널’ 이탈리아인들은 이상하게 중년 이상이 많았다. 아시시나 친퀘테레 같은 작은 마을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래 세계사에 따르면 이는 결코 외지인의 속단이 아니다. 1950년 유럽은 세계 인구의 20%를 차지했지만 2030년 8%로 떨어진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10년 17%에서 20년이 흐르면 25%로 늘어난다. 재밌는 건 이탈리아나 프랑스는 그때 다소 인구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단다. 유입 이민의 수가 유출되는 수보다 많기 때문이다.
단언하건대 이민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먹고살려고 조국을 떠나 타향살이하는 심정이야 오죽할까. 버스에서 잠시 얘기 나눴던 에티오피아 난민도 차림새는 궁색하나 멋진 청년이었다. 좌판 노점을 할지언정 당당하고 친절했다.
문제는 오리지널들의 태도다. 난민이건 뭐건 그 땅에 정착한 이상, 그들은 똑같은 사회구성원이다. 길바닥에서 세월을 보내도록 내버려둘 일이 아니다. 유럽은 자체적으로 젊은 노동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나. 출신과 피부색을 따지지 말고 그들을 교육시켜야 한다. 그래야 설령 그 돈 벌어 고국에 보낼지언정 최소한 거리의 낭인이 돼 해 끼치진 않는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메이드 인…’에 집착하지 말고, ‘메이드 바이…’의 세상에 대비할 때다. 늙은 한국은 왠지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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