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북-미 대화 제의는 진정성이 없는 선전 공세에 가깝다. 북-미 대화를 하자면서 담화문의 상당 분량을 미국을 비난하는 데 할애하고, 비핵화가 김일성과 김정일의 유훈이라면서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인정하라고 다그쳤다. 한국 미국의 공조가 굳건히 유지되고 북한에 대한 중국의 태도가 달라지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인상을 준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장거리 로켓 발사와 올해 2월 핵실험 도발로 긴장을 고조시켰으나 국제사회의 강력 대응과 제재로 오히려 궁지에 몰렸다. 시진핑 국가주석 시대를 맞은 중국도 북핵 포기를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톡톡히 재미를 봤던 ‘도발→대화→보상’의 수순을 밟기 위해 대화 제의를 했겠지만 미국이 말려들 가능성은 낮다. 수석대표의 ‘격’을 트집 잡아 남북 회담을 무산시킨 뒤 대화 상대를 미국으로 돌려 한미를 이간시키려는 노림수도 쉽게 읽을 수 있다.
6·25전쟁을 일으킨 도발자가 미국이라는 북한의 주장부터 거짓말이다. 북한은 한반도의 비핵화가 김일성과 김정일의 유훈이라고 주장했지만 김정일은 생존 당시 1, 2차 핵실험을 주도했다. 핵무장을 추구한 김정일을 비핵화의 유훈통치자로 내세우는 북한의 태도에 진심이 담겨 있다고 누가 믿겠는가. 3차 핵실험을 지시하고 헌법에 핵보유국이라고 명기한 장본인인 김정은이 비핵화 운운하는 것도 뻔뻔한 일이다.
북한이 미국과 대화로 문제를 풀 의지가 있다면 북-미 합의 파기에 대한 반성부터 해야 한다. 북한은 지난해 미국과 핵실험, 장거리 로켓 발사, 우라늄 농축 활동을 중단하는 대신 24만 t의 영양 지원을 받는다는 내용의 2·29합의를 발표했다. 하지만 북한은 한 달여 뒤인 4월 13일 장거리 로켓을 발사해 합의서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에 벌어진 일이다. 북한을 불신하는 오바마 대통령이 선뜻 대화를 수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은 이달 초 미중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북한의 핵무기 개발도 용인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미국은 북한이 핵 포기를 위한 실질적인 행동을 보여야 대화를 재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을 방문한 탕자쉬안 전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시 국가주석이 지난달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만났을 때 북한의 핵무기를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점에 쐐기를 박았다”고 전했다. 북한이 확고한 미중의 인식을 국방위원회 대변인 담화 한 장으로 흔들겠다는 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남북대화가 단절된 상태에서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를 서두를 이유가 없다.
북한이 현재의 위기 국면에서 벗어날 의사가 있다면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27일 개최되는 한중 정상회담을 전후해 핵 포기를 위한 구체적인 약속과 행동을 하는 일이다. 그것이 대화 재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북-미 대화 제의는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