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8월 12일. 그날 동아일보엔 화진포(강원 고성시)의 서양인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함경도∼강원도 동해안의 석호(潟湖)를 소개하던 ‘영동십주홍조기’(嶺東十洲鴻爪記)란 연재물인데 그날은 ‘선속결연(仙俗結緣) 턴 화진포, 백색후조(白色候鳥)의 하서지(夏棲地)’란 제목으로 서양인의 휴가풍속을 전하고 있다. 선속결연이란 신선세상과 속세가 마주했다는 것이고 백색후조는 여름이면 여길 찾는 백인, 하서지란 여름피서지를 뜻한다.
그런데 기사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글 스타일이나 구성, 내용이 지금보다 더 생동감 있고 자유로우며 위트가 넘쳐서다. 게다가 내용도 당시로선 아주 낯설었을 ‘원격지 여름휴가’다. 75년 전이라면 글쎄,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보릿고개가 큰 걱정거리였으며 평균수명이 오십(1945년)이 못됐을 어려운 시대였을 게다. 그러니 그때 것이라면 케케묵어 골동품 대접을 받을 터. 그럼에도 기사만큼은 첨단을 구가하니 놀람은 당연했다.
그런데 기사 중 내 눈을 붙든 대목이 있다. ‘양코들이 원산 명사십리에서 별장을 떠가지고 화진포 호변으로 화서 게딱지같은 어촌을 씨러버린 후 날러갈 뜻한 층층집을 짓고 히히낙낙(喜喜樂樂)거린다’는 부분이다. 원산의 별장을 화진포로 옮겨왔다는 대목이 내 취재본능을 자극했다. 그래서 찾은 화진포. 의문은 풀렸다. 서양인은 당시 조선에 상주하던 선교사 교사 의사, 국적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으로 다양했다. 층층집이란 ‘화진포의 성’이라고 불리는 옛 김일성 별장, 원산서 옮겨왔다는 별장은 지금도 이기붕 별장으로 불리는 전시관이었다.
화진포는 우리 휴양역사에 등장하는 두 번째 서양식 휴양지다.
첫 번째는 북한의 원산이다. 원산은 명사십리 해변으로 이름난 곳으로 주변은 산악과 고원이다. 한겨울엔 눈도 많이 내려 1927년 한국 최초의 스키장이 여기(신풍리) 생겼다. 올 연말 개장될 마식령 스키장도 여기다. 1929년엔 이곳 삼방협에도 스키장이 생겼는데 일제는 철도역과 산장(200여 명 수용)을 두고 용산역에서 정기스키열차까지 운행했다.
그런 원산이 당시 서양인에겐 여름휴양지로 눈에 들었다. 갈마반도와 20여 개 섬이 방파제 역할을 해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 영흥만 해변엔 명사십리가 펼쳐지고 그 배후엔 아름다운 호수가 산악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이곳. 산 바다 호수가 서양 휴양지 입지의 삼박자였으니 그걸 놓칠 리 없다. 그게 1930년대 명사십리 뒤편 호반에 서양인의 공동휴양소가 들어선 배경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이곳이 대륙침략(1937년 중일전쟁)을 준비 중이던 일제의 중국 공습 비행장 부지로 선정된 것.
설득에 나선 일제는 똑같은 입지를 찾아 이전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그게 바로 화진포다. 화진포를 보자. 원산 명사십리와 마찬가지로 뒤로는 설악산, 앞으로는 동해, 그 사이에 호수가 있다. 휴양소는 해변의 송림에 들어섰고 1937년부터 조선의 서양인은 예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이기붕 별장이 거기다. 그해 셔우드 홀 박사―한국에서 결핵퇴치에 헌신하고 최초로 크리스마스실을 보급한 의사로 1940년 일제에 의해 강제추방―는 해변에 예배당(현재 화진포의 성)도 짓는다. 유럽의 작은 성 모습의 이 이국적인 건물은 한국독립 후 북한 땅에 편입돼 공산당의 귀빈관으로 이용됐다. 이게 김일성 별장으로 불린 건 1948년 8월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이 어린 김정일을 데리고 휴가를 보낸 이후다.
내가 오늘 이 화진포의 서양인 이야기를 꺼낸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한참이나 선배이긴 하나 75년 전 조옥중 기자가 쓴 글 중에 당시 선교사의 고충을 왜곡, 희화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그건 ‘히히낙낙’이란 표현이다. 그들의 웃고 떠드는 모습이 그리 비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왜 거기 모였는지 그 저간의 사정을 이해했더라면 절대 쓰지 못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건 전혀 낯선 이국땅에서 죽음으로 내몰지도 모를 풍토병에 대비한 피신이었다. 하지만 당시 기자는 이런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다. 75년 만의 뒤늦은 정정 보도를 통해 나는 이들의 헌신에 거듭 감사드린다. 겸해서 관계기관에는 이 두 건물을 ‘셔우드 홀’과 ‘외국인 선교사’ 기념관으로 바꿔 줄 것을 촉구한다. 감사할 줄 모른다면 문명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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