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핵연료 공론화가 시작된다. 정부는 2016년부터 포화 상태에 이르는 사용후핵연료와 관련해 6월 중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관련 법률에 따라 인문사회와 기술공학 분야, 원전지역 및 시민단체 등이 추천한 15명 내외의 인원으로 구성된다. 정부에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백지상태에서 공론화를 시작한다고 한다. 위원회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위원회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고 행정지원만 하겠다는 구상이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는 과거 정부 일방 주도의 정책 방식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고 있다.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와 사회적 소모를 겪은 중·저준위 용지 선정 사례를 교훈으로 삼고 있다. 시민단체와 지역주민들은 방사성폐기물관리사업과 관련해 일회성 의견 수렴이 아니라 상시적이고 체계적인 참여를 요구해왔고 이러한 맥락에서 2004년부터 지역주민과 시민단체를 아우르는 사회적 합의기구 구축이 논의됐다. 현재 논의 중인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의 출발점인 셈이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에는 원전지역 주민이 참여하며 지역주민의 광범위한 의견 수렴을 위해 별도로 원전 소재지역 특별위원회 구성도 추진한다. 일부에선 공론화위원회가 전 국민과 관련된 사회적 책임을 결정하기 때문에 직접 이해당사자인 원전지역 대표가 위원으로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없지 않다. 한편으로는 공론화에 응하면 고준위방폐장을 밀어붙이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에 위원회 참여를 주저하는 지역도 있다.
하지만 원전 주변에서 오랜 기간 살아온 지역주민들이 방사성폐기물에 대한 불편과 어려움에 관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방사성폐기물 관리 프로그램은 국가적인 차원의 결정이 특정한 장소에 집행되는 문제일 뿐 아니라 지방정부, 폐기물 생산자, 폐기물 관리운영자, 지역주민 모두를 포함하는 지역사회와 국가 간의 진정한 파트너십이 형성돼야 하는 문제다.
사용후핵연료 관리 문제는 전 세계 원전 운영국가들의 공통된 난제이기도 하다. 400기가 넘는 원전에서 매년 1만2000t 이상의 사용후핵연료가 발생되고 있는데 아직 고준위폐기물 처분장을 운영하는 국가는 없고, 핀란드 스웨덴만이 처분시설 용지를 선정한 상태다. 우리나라는 현재 원전의 임시저장시설에서 관리되고 있으나 조만간 저장용량 포화로 대책 마련이 더욱 시급하다.
방폐물관리사업 분야에서 가장 앞서 나간다는 스웨덴조차도 최종 처분장을 구하는 데 30여 년의 세월을 보냈다. 스웨덴은 1977년부터 최종 처분장 용지를 선정하기 위해 노력해온 결과 2009년 포르스마르크에 용지를 구했다. 스웨덴의 교훈은 파트너십 구축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인내일 것이다. 정부와 사업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횟수로 주민과의 대화에 나섰고 주민 스스로가 판단할 수 있도록 직접적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물론 최종 처분장과 같은 규모의 연구시설을 1995년부터 운영해 오면서 국민에게 실제적인 연구 노력을 눈으로 확인시켜 준 것도 신뢰 확보의 기반이 됐다.
우리나라도 1980년대 후반부터 중간저장시설 용지를 확보하려고 노력해 왔으나 파트너십 구축보다는 정부 주도 일변도였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제 우여곡절 끝에 공론화라는 합의기반의 새로운 접근 방법이 자리잡게 됐다.
사회적 쟁점에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소수 의견에도 진지하게 주목하고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상이한 생각은 종종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다양한 의견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회가 건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같은 과정은 해결책을 찾는 중간 단계여야 하며 이를 위해 장(場)은 반드시 열어야 한다. 그리고 이 장에서 국민적 지혜를 모아야 한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가 진정한 파트너십 구축과 갈등 조정을 위한 장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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