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칼럼]원전마피아, 신화에서 추락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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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그놈의 원전마피아 때문에….” 에어컨이 안 돌아가는 실내에서 이런 사태를 부른 원자력 업계를 향한 짜증이 높아진다. ‘마피아’라고까지 불리는 원자력 업계의 특수성은 그 태동기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힘들다. 원자력은 처음부터 발전(發電)이나 치료가 아니라 대량살상무기로 개발됐다. 2차 세계대전 중에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인 ‘맨해튼 프로젝트’가 기원이다. 원자폭탄 개발은 미국 영국 캐나다 30여 곳에서 분산돼 이뤄졌고 개발 과정은 1급 비밀이었다. 원폭 개발에 참여한 사람들은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세계적 학자들이었다. 원자력의 비밀주의와 엘리트주의는 이처럼 뿌리가 깊다.

인류가 원자폭탄의 가공할 힘을 목격하고 전쟁이 끝나면서 원자력은 ‘평화적 이용’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원자력 잠수함 노틸러스가 개발되고 그 반응로를 변형시켜 상업용 원자로가 만들어진다. 그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을 다루는 사람들의 독특한 사고체계는 바뀌지 않았다. “그들(원자력 사람들)은 미국이라는 자유민주주의 바다에 떠있는 사회주의자의 섬”이라는 표현은 1950년대 미 의회 청문 과정에서 나왔다.

비밀주의와 엘리트주의는 우리도 다르지 않지만 우리에겐 또 다른 특징이 있다. 첫째 원전 사고와 정권의 성격에 따라 부침을 겪었던 다른 나라와는 달리 국내 원자력은 역대 대통령들의 전폭적 신뢰와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최초의 국가 종합연구기관인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원전을 도입한 데 머물지 않고 핵무기 개발까지 꿈꾸었다.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원전 수출을 이룬 이명박 대통령까지 원자력은 역대 대통령들의 무한신뢰의 대상이었다.

둘째 국내 원자력에는 애국주의가 결합해 있다. 1970년대 아무런 지식도 기술도 없는 엔지니어들이 웨스팅하우스사에서 눈칫밥을 먹어가며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우던 이야기는 전설이 되었다. 그런 투혼은 물질적 보상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고 투철한 사명감과 애국심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초기 원자력산업의 스토리는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의 ‘제철보국’ 못지않은 ‘원전 신화’다. 얼마 전 미국과 캐나다의 원자력 업계를 둘러보았을 때 한국의 독특한 원자력 문화를 실감했다. 이들 나라에선 원자력 규제기관 사람들은 공무원이었고 원전운영자는 그저 비즈니스맨이었다. 원자력 전공 교수, 한국수력원자력 직원, 원자력 규제기관 공무원까지 모두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한다”고 주장하는 우리와는 달랐다.

셋째 우리 원자력 업계는 사제와 선후배로 얽힌 학연(學緣)이 작동하고 있다. 학연은 어느 분야에서나 존재하지만 학연과 전문성이 겹칠 때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폐쇄성은 커진다. 서구에서는 워낙 많은 대학이 있기 때문에 특정 학맥이 업계를 장악할 수 없다. 맨해튼 프로젝트만 해도 미국 영국 호주는 물론 독일의 망명 과학자 등 다국적 학자가 참여했다.

원전 사고 은폐, 납품 비리에 이어 시험성적서 위조까지 터지면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그러잖아도 좋지 않은 원자력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전문성 비밀주의 애국주의 학맥으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며 외부와의 소통을 무시한 원자력 식구들에게 큰 책임이 있다. 내부고발이 있었다는 것은 원자력이라는 큰 파이를 두고 업계 내에서 균열이 시작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구조적 비리가 이제라도 곪아터진 것이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안전은 사고를 겪으며 더 강화된다. 다만 전체 원자력 종사자들의 과도한 사기 저하가 안전을 되레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은 걱정이다. 교사에게서 심한 꾸중을 들은 학생은 실수를 더 많이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수의 선량한 원자력 종사자와 ‘마피아’ 소리를 듣게 한 주범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암암리에 거론되는 마피아 두목의 이름이 궁금한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원전마피아#원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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