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찾은 연세대는 젊은이들 특유의 활기와 낭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1970년 백양로에 세운 독수리상은 여전히 창공을 향해 힘찬 날갯짓을 하고 있었고, 핀슨관 앞 작은 언덕의 윤동주 시비(詩碑)는 조용히 방문객을 맞았다. 그러나 이런 목가적 풍경과는 달리 연세대는 제3 창학(創學) 선언, 인천 국제캠퍼스(송도캠퍼스) 개막, 레지덴셜 칼리지(RC·Residential College) 프로그램 도입, 백양로 재창조, 언더우드국제대(UIC) 학제 개편으로 부산하다. 정갑영 연세대 총장을 만나 변화의 저변을 들여다봤다.
―2013학번 새내기부터 송도캠퍼스에서 기숙사 생활을 한다는데….
“그렇긴 한데 아직 기숙사를 다 짓지 못해 한 학기만 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신입생 전원이 송도캠퍼스에서 1년간 기숙사 생활을 한다. RC의 목표는 학습과 생활공동체를 통해 5C, 즉 창의력(Creativity) 소통능력(Communication) 융·복합능력(Convergence) 문화적 다양성(Cultural Diversity) 크리스천 리더십(Christian Leadership)을 지닌 글로벌 인재를 길러내자는 것이다.”
언더우드국제대가 연세의 기함 될것
지금은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가 높고 “RC를 연장해주면 안 되겠느냐”는 문의도 많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작년만 해도 ‘송도캠퍼스에는 못 가겠다’고 하는 플래카드가 백양로를 뒤덮었다. 교수들도 “우리 단과대만은 못 가겠다”고 버텼다.
―RC 프로그램은 어떻게 운영하나.
“현재 8개의 하우스(기숙사를 이렇게 부른다)가 있다. 각각의 하우스마다 레지덴셜 마스터(RM)가 있고 학생 20명당 한 명의 조교가 함께 생활한다. RM을 맡은 교수들이 하우스마다 특색 있는 테마를 내걸면 학생들이 그 테마를 보고 마음에 드는 기숙사를 택한다. 비슷한 성향을 가진 학생끼리 생활하는 것이다. RC 학생들은 전공에 상관없이 예술체육, 사회기여, 대학윤리 등에서 최소한 12학점을 이수한다. 전인교육을 목표로 하는 HE(Holistic Education) 과목 중에는 인천 지역 청소년들의 방과 후 학습을 도와주는 ‘연인(연세-인천) 프로젝트’도 있다. 공동체 생활과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통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이해심과 리더십을 기르게 된다.”
―최근 자유전공학부 폐지를 둘러싼 갈등을 보면 모든 게 순조롭지만은 않은 것 같다.
“자유전공학부는 법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하면서 기존 법대 정원을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학문 간 융합이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한두 개의 인기전공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어버렸다. 자유전공학부를 UIC 글로벌 융합학부로 통폐합한 것은 자유전공학부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대한 것이다. UIC야말로 진정한 리버럴아츠(인문교양) 교육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UIC는 입학정원이 450명으로 매우 큰 단과대다. 강의는 100% 영어로 하고, 58개국 출신이 공부하는 명실상부한 한국형 글로벌 프로그램이다. 교수진도 최고 수준이다. 나는 UIC가 연세대의 플래그십(기함·旗艦)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UIC를 통해 송도캠퍼스를 세계적 대학으로 육성할 것이다.”
―목표를 이루려면 아무래도 돈이 많이 들 텐데 내년부터 반값등록금 정책이 시행된다.
“돈 쓸 곳은 많은데 재정이 어렵다. 연세대 등록금은 4년째 동결됐다. 대학등록금이 정말 높은 수준인가를 따져보고 싶다. 의무교육인 초등학교 교육비용이 연간 600만 원이고 일부 사립유치원의 수업료도 1000만 원을 넘는다. 자율고 자사고 등의 수업료가 1000만 원대에 이르는데 사립대 평균 등록금은 800만 원이 되지 않는다. 정부 생각은 대학등록금이 연간 14조 원에 이르니까 절반인 7조 원을 투자하면 ‘반값등록금’이 실현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경제학을 전공한 정 총장은 꼼꼼하게 근거를 제시하며 오스트리아 빈 대학을 사례로 들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광이 숨쉬는 빈 대학은 1365년 설립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명문대의 하나다. 몇 년 전 오스트리아 사회당이 집권해 대학정책을 바꾸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사회당 정부는 대학등록금, 학생 정원, 시험 등 3가지를 없애버렸다. 그러자 자국 대학에서 떨어진 외국 학생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면서 학생 수가 9만 명으로 불어났다. 유서 깊은 명문대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정 총장은 반값등록금을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았다.
규제 풀어야 창조경제 베이스캠프 돼
“등록금상한제법이 있는 걸 아느냐. 등록금을 인상할 경우 학생지원 장학금이 불이익을 받도록 되어 있어 올리고 싶어도 올릴 수가 없다. 그것까지는 괜찮다. 사립대가 등록금 인상 범위를 준수하고 그 안에서 인상할 경우에는 정부가 최소한 페널티는 주지 말아야 한다. (평준화 제도 안에 있는) 고교 중에도 일반고보다 등록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자율고 자사고가 있지 않은가. 대학 중에도 반값등록금에서 자유로운 자율형 사립대를 만들면 어떨까 제안해 본다.” 대신 자율형 대학으로 지정되면 저소득층을 일정 비율 뽑고, 그들에게 전액 장학금을 줘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도록 하면 어떠냐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주장하면서도 대학 경쟁력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최근 에베레스트 정상 등반에 성공하는 사람들의 수가 엄청나게 늘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과거 해발 2000m 부근에 있던 베이스캠프를 6000m 부근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 경쟁력이 창조경제라는 정상을 향한 베이스캠프라고 생각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출신이 세운 기업들의 연매출 합계가 2조7000억 달러(약 3000조 원)에 이른다는 보고서가 작년에 나왔다. 1930년대부터 스탠퍼드대 동문이 세운 기업이 4만 개, 이들이 창출한 일자리가 540만 개나 된다. 정부가 대학등록금이나 입시 등에서 규제를 조금만 풀어주면 우리 대학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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