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희균]내 주머니는 왜 가벼워지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4일 03시 00분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변호사 몇 명과 함께 법무법인을 운영하는 선배가 요즘 손에 쥐는 돈이 없어 힘들다고 했다. 서울의 병원장은 불안해서 못살겠다고 했다. 외국인 관광객 안내 책자에 대문짝만 하게 실리는 식당을 운영하는 동네 지인도 비슷한 말을 했다. 다들 세무조사가 너무 심해져서 그렇다고 했다. 요즘 재테크 강연회에 가면 세금 폭탄에 대한 경고가 괴담 수준으로 쏟아진다고 했다.

먹고살 만한 분들이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할 뻔했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투명 과세를 하겠다는데 불만이라니. 투명한 유리지갑의 소유자, 즉 월급쟁이의 한 사람인 필자도 나날이 세금이 늘어나는 월급 명세서를 묵묵히 받아들건만 말이다. 그런데 국가영어능력시험(NEAT)을 지켜보면서 성실히 세금 내면 뭐하나 싶은 ‘불경한’ 생각이 들었다.

NEAT는 이명박 정부가 실용영어를 제대로 가르치겠다며 만든 제도다. 2008년부터 만들기 시작해 연구개발비로 390억 원을 투입했다. 기술 개발에 참여한 전문가에 따르면 NEAT는 세계 최초로 가상화데스크톱환경(VDI)을 적용해 최첨단 시스템을 갖추었다고 한다. 지난해 처음 실시된 평가에서 교육 당국은 전시 작전 수준으로 수험생 개개인의 시험 상황을 실시간 체크하며 무사고를 달성했다.

그러던 NEAT가 2년 차에 큰 사고를 냈다. 이달 초 시행된 고교생용 2, 3급 시험에서 무더기 전산오류를 일으켰다. 전산오류보다 심각한 문제는 교육 당국의 대처 태도다. 일부 수험생에게만 답안 작성 시간을 추가로 주는가 하면, 심지어 어느 수험생의 답안은 이틀 뒤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는 사고 당일 원인도 파악하지 못하다 뒤늦게 감사를 하겠다고 했다. 올해부터 36개 대학이 NEAT를 입시에 반영하기로 결정한 마당이라 이런 부실한 시험을 유지하면 안 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이미 NEAT로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를 대체하겠다던 계획은 물 건너간 형국이다.

NEAT 사고에서 엉뚱하게 세금 생각이 난 이유는 초기 NEAT 개발에 관여한 이의 얘기 때문이었다. 그는 “시스템은 이미 짜여 있는데 첫해에 멀쩡하던 시험이 왜 두 번째 해에 사고가 나느냐. 결국 의지의 문제”라고 했다. NEAT를 탄생시킨 지난 정권은 ‘작은 실수만 있어도 모두 옷 벗을 각오를 하라’며 서슬이 퍼�다고 한다. 반면에 NEAT에 뜨뜻미지근한 이번 정권에서는 자연히 관련자의 군기가 풀렸다는 설명이었다.

이런 식으로 NEAT가 흐지부지되면 390억 원은 공중으로 사라진다. 우후죽순 생겨난 NEAT 사교육 비용을 따지면 국민 주머니에서 나간 돈은 훨씬 많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랴부랴 정책이 생겨나고, 또 용도 폐기된다면 거기에 쓰인 헛돈은 모두 국민의 부담이다. 성실히 세금을 내봐야 정권 교체와 함께 날아간다면 나부터 세금 내기 싫어진다.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foryou@donga.com
#NEAT#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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