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의 출구전략 때문에 죽겠다”는 목소리가 높다. 주식 채권 원화의 가치가 동시에 떨어지면서 양적완화(QE) 축소의 후폭풍에 휩싸였다. 이 와중에 일부 전문가나 기업인들은 출구전략으로 한국에 대재앙이 닥칠 듯 불안감을 유포하고 있다. “위기 상황이니 제발 힘들게 하지 말고 지원이나 하라”는 주문도 뒤따른다. 맞는 말일까?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지난주 처음으로 말을 꺼낸 출구전략이란 2008년 이후 5년간 써오던 양적완화를 축소하겠다는 뜻이다. 작년부터 미국 경제에 회복 조짐이 보였지만 버냉키 의장이 이 단어를 공식 언급한 것은 ‘경기 불확실성이 거의 제거됐고 회복에 대한 확신이 섰다’는 의미다.
미국경제가 침체한 상태에선 한국경제 역시 되살아나기 힘들다. 미 경제 회복에 대한 공감이 형성됐다니 얼마나 반가운가.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일이다. 그렇다면 걱정하는 목소리의 정체는 뭘까. ‘미국 경제가 계속 죽을 쒀 양적완화가 지속되는 게 좋다’는 뜻은 아닐 텐데….
버냉키의 출구전략은 “경기가 과열 기미를 보이므로 진정 정책으로 선회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언제쯤부터 양적완화 규모를 줄일지 시기를 살피겠다는 뜻이었다. 양적완화가 뭘까. 명목금리조차 ‘0’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에서는 금리인하라는 기존 정책으로는 약발을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금리와 무관하게 돈을 풀되 자산유동화증권(1차 QE), 미 국채(2, 3차 〃), 모기지채권(3차 〃) 등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중앙은행이 돈맥(脈) 경화 지점에 직접 돈을 꽂아주겠다’는 것이다. 이런 거칠고 비정상적인 정책을 5년이나 썼으니 금융부문에 거품이 낄 수밖에 없다. 진짜 걱정해야 할 일은 양적완화의 졸업이 아니라 ‘양적완화 조치를 너무 오래 해 금융의 바다에 새로운 태풍 에너지가 잔뜩 축적된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지나치게 낀 금융거품이 결국 터진 것이다.
물론 출구전략이 시작되면 과도기적 충격이 온다. 금융시장은 예고만 나와도 즉시 출렁인다. 밀물이 들어와 모든 배가 떠오르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그 물살이 너무 세찰 경우 준비 안 된 작은 배는 전복될 수 있다. 가계 기업 은행 정부 등 각 경제주체는 급류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 정부가 시작한 외부충격 관리다.
그렇다고 썰물이 밀물로 바뀌려는 조짐을 보고 재앙이 올 것처럼 호들갑 떨면 안 된다. 전체 판세를 못 보는 근시안이다. ‘이른바 전문가’들이 이런 소리를 하면 세상을 오도하게 된다. 기자는 지난 회 이 난 칼럼 ‘엔저(低)라고?’에서도 비슷한 실수를 지적했다. “아베노믹스는 장기침체에 빠진 일본경제를 살리려는 시도이며, 일본경제가 회복돼야 세계경제가 뜨는데 어떻게 아베노믹스가 한국에 위협인가”라고 물었다. “아베노믹스의 중간생성물인 엔저에 꽂혀 아베노믹스 효과라는 전체 지형을 못 보니 ‘엔저 때문에 죽겠다’는 소리만 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주사가 아프니 안 맞겠다’는 어린애와 뭐가 다를까.
아베노믹스는 미뤄둔 고질병 치료가 드디어 시작됐다는 뜻이며, 미 출구전략은 응급조치가 끝나간다는 의미다. 두려운 것은 질병이며 치료의 시작이나 환자의 회복은 굿 뉴스다.
엄살의 체질화는 한국경제의 의존적 타성과 직결된다. 사사건건 “어렵다. 정부가 도와 달라, 특혜를 달라”는 요구로 이어진다. 이 같은 성향은 ‘경제 민주화가 알고 보니 중견 중소기업도 죽인다’는 기업 일각의 최근 주장에서도 잘 나타난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대기업만 불공정·부당행위를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중소기업)의 불공정 행위도 꽤 있더라. 제재하면 피해가 크다. 뭔가 조치해 달라”는 요지다. 어처구니없다.
몇 가지 사례를 들었다. 이제 세계 15위 한국경제의 격(格)에 맞게 진단을 하고 주장도 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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