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 변양호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59)이 사모(私募)펀드를 만들겠다며 사표를 던졌을 때 깜짝 놀랐다. 언젠가는 장관 할 사람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믿었기에 금융 장사꾼으로 변신하겠다는 그의 선언은 화제가 됐다. 경기고, 서울대 상대 졸업에 행정고시 수석 합격, 모피아의 꽃으로 불리는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2년 10개월의 최장수 재직 등 화려한 스펙도 관심에 한몫했다.
그런 그가 1년 반 뒤인 2006년 6월 12일 아침 출근길에 검찰에 긴급 체포됐다. 현대차에서 뇌물 2억 원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받은 돈이 없기에 금방 풀려날 것이라는 그의 생각은 그러나 오판이었다. 292일 동안 옥살이를 했다. 법정에는 142차례나 섰다. 영장실질심사는 3번, 법원 선고는 11번 받았다. 1심 서울중앙지법 무죄(2007년 1월), 2심 서울고법 유죄(2008년 8월), 3심 대법원 무죄(2009년 1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드라마였다. 고위공직자의 뇌물수수 사건은 돈을 줬다는 진술만 있으면 구속수사가 관행이란다. 돈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피의자가 증명해야 한다. 그것도 감옥에 갇혀 있는 불리한 상황에서.
뇌물사건으로 수사 받던 중 검찰은 외환은행을 외국자본인 론스타에 헐값에 팔아먹었다는 혐의로 그를 다시 구속기소했다. 소위 ‘별건(別件)수사’라는 거다. 본건수사와는 관계없는 주변 비리를 저인망으로 훑어 일단 구속해 놓고 진짜 수사하고 싶은 것을 나중에 들이대는 ‘더티한’ 수사기법이다. 그러나 1심부터 2심, 3심까지 모두 무죄였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헛발질이자 참담한 패배였다. 재판이 끝난 2010년 10월 14일까지 4년 4개월 동안 감옥을 드나들며 변양호의 인생은 끝 모를 나락으로 추락했다. 평화롭던 가정도, CEO를 잃은 회사도 휘청거렸다.
그가 억울한 옥살이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한 책을 최근 펴냈다. ‘변양호 신드롬-긴급체포로 만난 하나님’(홍성사)이다. 검찰의 부당한 수사에 억울하게 우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 썼단다. 재판 중이던 2008년 초고(草稿)를 출판사에 맡겼다가 검찰에 새나가는 바람에 우여곡절 끝에 5년이 지나서야 빛을 보게 됐다. 그는 억울해서 감옥에서 울고 또 울었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외동딸 은수가 눈물로 기도하며 아버지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뛰는 노력이 눈물겹다. 옥중에서 만난 하나님과 신앙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죄 없이 감옥생활을 하는 처참한 고통을 당했지만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다. 검찰도 용서했다. 나에게 뇌물을 주었다고 주장했던 그도 용서했다.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 고통이 축복이었다.”
검찰을 많이 비난했던 초고보다는 줄었지만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무소불위(無所不爲) 검찰 권력과 검찰 기소독점주의, 기소재량주의의 폐해, 진술에만 의존하는 공직자 뇌물수사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형량을 낮추고 벌금을 깎아줄 테니 더 센 사람을 불라”는 검사의 회유는 권력자를 잡아넣기 위해 피의자와 흥정하는 우리 검찰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시도 때도 없이 검사실에 불러놓고 윽박지르는 검사, 일단 인신구속부터 하는 관행, 협조하지 않으면 추가 기소한다는 검사의 으름장이 생생하다.
모질게 수사한 박영수 대검 중수부장은 옷을 벗었다. 밑에 있던 수사기획관 채동욱은 지금 검찰총장이다. 무죄를 받은 그에게 국가는 아무 배상도 하지 않았다. 뇌물 줬다고 거짓 진술한 김동훈 전 안건회계법인 대표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법원이 기각했다. 검찰과의 악연으로 온갖 고초를 다 겪고도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그는 참 바보 같다. 요즘 유행하는 낙하산 한번 못 타본 모피아, 전관예우 문턱에도 못 가본 변양호가 쓴 책을 박근혜 대통령이 올여름에 꼭 일독(一讀)하기를 권한다. 모피아나 검사는 말할 것도 없고.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