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균의 우울증 이기기]산후우울증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5일 03시 00분


류인균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장 약대 석좌교수
류인균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장 약대 석좌교수
갓 태어난 아기의 작은 손과 발이 꼬물꼬물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고 또 만져 보는 아기 엄마와 아빠의 얼굴은 빛난다. 아기를 바라보며 마냥 즐거워 웃음을 짓다가는 카카오톡이든 페이스북이든 아기 사진으로 도배를 한다. 자신의 딸을 각별히 아끼는 아버지를 일컫는 ‘딸바보’라는 말도 세간에 흔히 사용된다. 이렇듯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그 부모에게 신비롭고 경이로운 시간이다.

그러나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나는 데는 많은 것이 요구된다. 수년 전 진료실에서 만난, 첫째 아이를 출산한 지 1개월 된 A 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엄마 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다더니, 우리 엄마 말뿐 아니라 친구 엄마 말도 틀린 게 없었어요.”

A 씨는 몇 년 전 대학 졸업 직후 결혼한 친구의 집에 놀러가 잘 꾸며진 신혼집에서 임신 중인 친구를 보았다. 자신은 결혼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고 미래가 불안하기만 한데, 일찍 안정된 것처럼 보이는 친구의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마침 친구의 친정어머니가 친구의 집에 집안일을 도와주러 오셔서는, A 씨를 보고 한숨을 푹 쉬더라는 것이다. 친구의 친정어머니는 “우리 ○○도 너처럼 하늘하늘한 치마 입고 놀러 다녀야 할 나이인데, 이렇게나 일찍 아이를 갖고 이제 아이에게 매여 살게 되었으니 내 마음이 좋지 않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A 씨는 당시 그 말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자신이 아이를 낳고 보니 ‘정말 이해가 되더라’는 것이다. 미혼 때 왜 그렇게 불안해하고 그 시절을 즐기지 못했는지 후회를 하면서 말이다.

임신, 출산, 육아의 과정을 살펴보면 극심한 신체적 심리적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호르몬이 급격히 변화하게 되고, 출산 시에는 통증도 심하고 출혈도 한다. 이전에는 생활의 리듬이 자기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아이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 집 아이들이 어렸을 때를 돌아봐도 밤잠을 깨우는 아기 울음소리가 스트레스였다. 낮에 연구실 나무 옆 그늘에서 가끔 우는 새끼 고양이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던 기억이 있다.

이 외에도 무수한 변화와 스트레스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산후에 다소 우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잠시 지나가는 경도의 우울감이 아니라 거의 매일 하루 종일 우울한 기분 혹은 매사 흥미 없는 상태가 2주 이상 지속되고, 수면의 과다나 불면, 식욕 저하, 불안과 피곤, 짜증이나 감정 폭발이 출산 후 2주 내에 나타났다면 ‘산후우울증’으로 진단을 하게 된다. 산후우울증은 연구에 따라서 출산 여성 중 10∼25%가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드물지만 출산 경험이 없는 남편들 중에도 산후우울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

A 씨와 같이 출산 후 경도의 우울감이 온 경우 모유 수유를 원한다면 약물치료를 하지 않고도 가족의 도움을 받고 환경을 변화시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우울감이 심해져서 우울증으로 진단받을 정도라면 적극적인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모유 수유를 할 경우 분유 수유를 할 때보다 산후우울증이 적다는 보고도 있다. 물론 모유 수유의 장점이 많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약물치료가 반드시 필요한 정도의 우울증일 때 모유 수유를 이유로 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산후우울증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엄마가 아이들을 일관되게 대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대처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경우 아이들은 ‘외부환경이 불안하고 불안정하다’라는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우울한 엄마는 아이에게 다정하게 말하지 못하고, 표현 방법도 다소 떨어진다. 우울한 산모는 아기가 배고파 울어도 이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고 수유를 제때 하지 않는다. 때로는 아기에게 사소한 문제가 생겨도 ‘다 내 잘못이지’ 식으로 자책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런 모습은 아기에게 좋지 않다.

특히 초보 엄마일 경우 아기가 왜 우는지 몰라 당황할 때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속으로 쌓인 화와 짜증이 엄마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할 지경이라면? 아이를 흔들어 뇌손상을 만드는 ‘셰이큰 베이비 증후군(shaken baby syndrome)’과 같은, 의도치 않은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산후우울증이 심각하다고 느껴질 때는 먼저 산모와 아이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염려하는 것이 좋다. 극단적인 경우 산모와 아이를 일정 기간 떼어 놓기도 한다.

이런데도 산후우울증을 가볍게 여기거나 약물치료에 대해 거부감이 심한 부부를 볼 경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비약물적인 치료 방법도 있으므로 적절한 치료를 제때 받아야 한다.

태어나자마자 바로 뛰어다니는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태어난 뒤 목도 가누지 못한 채 전적으로 다른 이에게 의존한다. 인간에게 모성본능, 부성본능은 부모가 아닌 아기를 위한 신의 위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산후 자신의 몸도 성치 않은데 아기를 돌보는 데 온 힘을 다하는 엄마가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까지 생존해 오지 못했을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모든 속물적인 것의 정반대가 되는 단어가 엄마”라고 말했다. 그러나 엄마에게도, 특히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슈퍼맘을 요구당하는 이 시대의 산모들에게는, 때때로 도움이 필요하다.

류인균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장 약대 석좌교수
#산후우울증#임신#출산#육아#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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