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정렬]진주의료원 사태, 해법이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6일 03시 00분


이정렬 전 서울대병원 기조실장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이정렬 전 서울대병원 기조실장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우리는 겉으로는 의원, 병원,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 및 전문요양기관으로 분류되어 의료전달 체계가 갖추어져 있는 듯하다. 하지만 전문의 비율이 90%나 되어 한쪽으로 쏠리고 있고, 병의원 설립이 사회의 거시적인 기획 조정 없이 의료 자본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실제로는 균형 발전에 어려운 점이 많다.

환자들은 감기만 걸려도 3차 병원을 방문하고 ‘명의(名醫) 쇼핑’으로 자원을 낭비하며 한번 입원하면 퇴원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결과 급성중증 환자는 입원을 할 수 없게 되고 환자가 몰리는 병원에는 병상이 부족한 것으로 인식되어 병상 증설 과잉 경쟁까지 벌어진다. 다른 한쪽에서는 환자가 없어 병원들이 문을 닫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와 사회의 보살핌 하에 적절한 기능과 의료전달 체계를 구현할 수 있는 공공의료 병원들이 존재한다는 점은 다행이다. 대표적인 것이 진주의료원 같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지방의료원과 안전행정부 소속의 보건소 등이다.

그런데 이들은 지금 사면초가에 놓여있다. 대형병원은 물론 지역 의원이나 재원을 앞세운 중형 민간병원과도 경쟁하기 힘들다. 환자가 오지 않아 생긴 현상을 경영 부실로만 인식해 지자체들은 결과만 가지고 책임을 묻고 있다.

하지만 공공병원에는 시설도 있고 공간도 있고 장비도 있다. 비록 ‘무늬’만이긴 하지만 의료전달 체계 내에서 분담된 기능도 있다. 반면 의료기술과 교육이 부족하고 가장 중요한 ‘환자’가 없다. 또 특화된 역할이 정의되어 있지 않고 의료전달 체계상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연계가 없다. 이런 점에 착안하면 국립대 병원 또는 대형 사립병원 등 3차 의료기관들을 지방의료원과 ‘파트너십’을 맺어 협력하는 의료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굉장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고 본다.

공공의료기관들이 제구실을 한다면 국가적 혜택은 크다. 대형병원은 급성중증 환자와 만성중증 환자에 집중할 수 있고, 지방의료원들은 경증 환자와 능력이 되는 범위 내에서의 급성 환자들을 처리할 수 있으며, 대형병원들과 연계만 잘되어 있다면 고난도 치료가 필요한 응급환자를 보낼 ‘형님 병원’이 생기니 좋다. 대형병원에서 첨단 기술을 필요로 하는 환자의 급성 치료가 끝나면 지역의료원으로 보내 안정시킬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지방의료원은 환자가 늘 것이고 의료의 질 향상은 물론이고 경영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병상 증설도 필요 없고 환자들은 필요한 경우에만 수도권 대형병원을 찾게 되니 약만 받으러 수도권 병원을 찾을 일이 없다. 무엇보다 지방의료원으로서는 기존의 인력 자원 공간 장비를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니 국가 재정이 추가로 필요하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지방의료원을 제대로 가동시키는 데에는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우선, 대형병원과의 연계가 가능하도록 하자는 데 국민적인 동의가 필요하다. 이 동의를 바탕으로 시범사업으로 상급 의료기관과 가까운 몇몇 지방의료원 사이에 연계망을 구축해 이들 사이에 기능분담에 관한 자유로운 협약을 맺는 것이다.

협약의 골자는 환자를 어떤 식으로 분담할 것인지, 환자 중심의 적시(適時) 치료, 인적 교류, 교육과 기술이전을 어떻게 할지 등에 관한 것들이다. 이때 정부나 자치단체는 최대한 자율과 결과 중심의 평가를 독려하고 필요한 자원을 지원한다. 여기에 의료정보 및 병원 운영시스템의 전산화 스마트화로 의료기관 간 소통 통로가 정보화되고 원격 진료까지 가능하게 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번 진주의료원 사태를 ‘의료원을 살리느냐 죽이느냐’ 문제로만 보지 말고 공공 의료기관의 문제점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분석해서 대안을 찾아내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진주의료원 문제를 경영 부실로만 보는 것은 단견이다.

이정렬 전 서울대병원 기조실장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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