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용]3000년 古都 시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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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의 화제를 모으다’는 말이 있다. 중국 당나라의 번화한 수도였던 장안에서 비롯된 말이다. 8세기경 이미 인구 100만 명이 넘는 ‘글로벌 메가 시티’였던 장안은 지금의 산시 성 시안(西安)의 옛 지명이다. 중국인들은 “시안을 보지 않고 중국 문화의 위대함을 알지 못 한다”고 말한다. 중국 대륙의 한가운데 있는 시안은 아테네 로마 카이로와 더불어 세계 4대 고도(古都)로 꼽힌다.

▷주나라 무왕은 기원전 11세기경 상나라를 무너뜨리고 호경(鎬京·지금의 시안 근처)을 도읍으로 삼았다. 진나라에 이어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를 거치며 10여 개 왕조가 1100여 년간 시안에서 대륙을 다스렸다. 진시황은 불로장생의 꿈을 꾸며 이곳에 무덤과 병마용을 건설했다. 중국 서부의 거점인 시안은 동서 교역로인 실크로드의 출발지이기도 했다. 신라 승려 혜초는 4년간 인도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여행을 마치고 이곳으로 돌아와 ‘왕오천축국전’을 마무리했다.

▷당나라 멸망 이후 장안은 말 그대로 ‘황성옛터’가 됐다. 원나라와 명나라는 베이징을 수도로 삼았다. 명 태조 주원장은 도시 이름을 ‘서쪽을 평안하게 하라’는 뜻에서 시안으로 바꿨다. 시안은 20세기 들어 중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무대로 다시 등장했다. 1936년 국민당의 장제스(蔣介石) 총통은 공산당인 홍군의 토벌을 독려하기 위해 시안을 방문했다. 만주지역 군벌 장쉐량(張學良) 등은 그를 감금하고 국공(國共) 합작을 이끌어냈다. 이게 시안사변이다. 대장정을 끝내고 기진맥진하던 중국 공산당은 시간을 벌어 기사회생했다.

▷시안은 중국의 옛 영화와 새로운 미래가 공존하는 타임머신과 같은 도시다. 1999년 중국 정부의 서부대개발 이후 시안은 삼성전자가 70억 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짓는 등 첨단 하이테크 도시로 바뀌고 있다. 시안과 산시 성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키운 ‘정치적 고향’이기도 하다.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마친 후 박근혜 대통령이 시안을 방문하기로 한 것은 이런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있다. 시안에서 한중 협력의 ‘21세기 실크로드’가 활짝 열렸으면 좋겠다.

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
#장안#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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