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공개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은 ‘10·4 남북공동선언’이 어떤 과정을 거쳐 채택됐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박근혜 대통령은 7·4 남북공동성명(1972년)이나 남북기본합의서(1991년)처럼 6·15선언(2000년)과 10·4선언도 남북한 신뢰를 위해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영토 보전의 의무를 저버리고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경시하는가 하면 시종 비굴한 모습으로 합의를 구걸하다시피 했다. 후임 대통령이 그대로 이행하도록 ‘대못’을 박듯 무리해서 이뤄낸 합의를 과연 계승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 내부에서는 10·4선언의 이행을 두고 정상회담 직후부터 큰 논란이 있었다.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이 합의한 서해평화협력지대 설치, 개성∼신의주 철도와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안변 남포 조선협력단지 건설, 경제특구 건설과 해주항 활용 등에 쏟아 부어야 할 돈이 향후 15년 동안 최대 116조 원에 이른다는 추산이 나왔다. 임기를 넉 달 남긴 대통령이 북한 독재자와 만난 대가치고는 과다한 청구서였다.
노무현 정부는 회담의 성과도 부풀렸다. 노 전 대통령은 김정일 앞에서 “이번에 핵 문제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오라는 주문이 많다. 그런데 그것은 판 깨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주장 아니겠습니까”라며 스스로 꼬리를 내렸다. 그래놓고 국민에게는 “비핵화 의지를 남북정상회담에서 확인했다”고 자랑했다. 이산가족 문제가 제기되기는 했으나 김정일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고, 막판에는 노 전 대통령이 추가 논의를 만류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對)국민 발표에서는 “근원적인 해결 방안을 북측에 강력히 요구했다”며 사실과 다른 말을 했다.
공식 수행원으로 남북정상회담에 배석했던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 백종천 전 대통령안보실장은 지난해 10월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의 NLL 관련 의혹 제기에 대해 “비밀 녹취록도 없고 회담에서 NLL 이야기는 나올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246분의 정상회담 때 노 전 대통령 옆에서 맞장구를 쳐가며 들어놓고 나서 국민을 속인 것이다. 대통령선거 직전인 지난해 12월 민주당사에서는 “국민 앞에 명예를 건다”며 NLL 논의 사실을 부인했다.
이번 기회에 기형적으로 운영되어온 남북 관계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남북 관계의 물꼬를 트는 일이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칙을 세우고 정도(正道)를 걷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