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세연구원이 어제 ‘2013년 비과세·감면제도 정비에 대한 제언’을 주제로 공청회를 열었다. 앞으로 5년 동안 기존의 비과세 및 세금 감면 혜택을 줄여 18조 원의 재원을 새로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각계 의견을 청취했다. 기획재정부는 공청회 결과를 토대로 올해 세제 개편안을 만들고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비과세와 세금 감면 혜택은 정부가 도입할 때부터 일정 기간 적용한 뒤 폐지한다는 일몰(日沒) 조항을 두고 있다. 그러나 한 번 세금 혜택을 주게 되면 없애는 것이 쉽지 않아 계속 유지시키는 일이 많았다. 특정 집단의 로비도 비과세 혜택을 존치하는 데 영향을 줬다. 이런 점에서 일몰 기한이 도래한 세제 혜택을 정부가 원칙적으로 폐지하기로 한 것은 바람직하다.
문제는 이번에 세금 제도를 정비하려는 목적이 조세 정의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 마련에 있다는 점이다. 복지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세금을 늘리는 일은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세금 감면 혜택을 받던 것을 갑자기 없애 버리면 납세자로서는 증세(增稅)와 마찬가지가 된다. 요즘 국세청은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기업 중소기업까지 대상을 넓혀 ‘세금 더 거두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마른 수건까지 쥐어짜듯 세금을 걷겠다고 하니 기업들의 심리적 부담이 크다.
지난해 정부의 비과세 감면액 30조 원 가운데 분야별로는 농림어업이 17.6%, 중소기업은 14.6%를 차지한다. 소득 규모로 보면 서민과 중산층, 중소기업 비중이 절반이 넘는 59.4%나 된다. 이번 정부 방침에 따라 비과세 제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형평성 논란이 일 수 있고,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조세연구원은 감면 대상에서 제외하는 계층을 고소득층과 대기업 위주로 선별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징세 대상을 단칼로 베는 식으로 나누기는 매우 어렵다. 더구나 비과세 감면 혜택을 줄이면 봉급생활자들의 유리 지갑은 더 얇아질 것이다.
복지 재원을 마련하려면 국채를 찍어 나랏빚을 늘리지 않는 한 세금을 더 걷거나 비과세를 줄이는 길밖에 없다. 공약 이행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국민과 기업을 세금으로 압박하게 되면 경제에 더 큰 주름살을 안길 수 있다. 기획재정부는 18조 원이라는 수치에만 매달리지 말고 납세자가 수긍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과 개선책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