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는 자리였다. 화분에 심은 꽃씨에서 싹이 나왔다고 자랑을 했더니 함께 식사하던 분이 더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얼마 전에 아내가 냉장고에서 비닐에 싼 무엇인가를 꺼내더라고 했다. 그게 뭐냐고 물으니까 “뭔지 알면 당신 울 텐데”라고 말하더라는 것. 그러니 더 궁금했다.
“이거 7년 전에 아버님 돌아가실 때 그 고추씨여요. 아파트라서 심지 못했는데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했으니 심어보려고요.”
7년 전에 아버지는 마당에서 고추를 말리다가 쓰러지셨다. 그리고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국토교통부에 근무하는 그분은 공직에 있다 보니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해 늘 죄송하고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런 마음을 잘 아는 아내가 경황이 없는 중에도 아버지가 수확한 마지막 작물을 챙겨서 소중히 보관해온 것이다.
너무 오래된 씨앗이라서 반신반의하면서도 마당 한쪽에 파종을 했다. 그런데 싹이 나왔다는 것이다. 마치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신 듯 감격한 부부는 작은 고추밭에 온 정성을 쏟고 있다고 했다.
그 다음 날 잡지에서 한 장의 사진과 사진에 붙인 몇 줄의 글을 읽었다. 18년 전 아들이 태어난 기념으로 500원에 사서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운 행운목이 꽃을 피웠다고 쓰여 있었다. 그 기자를 개인적으로 잘 알기 때문에 마음이 짠했다. 글에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그의 아들이 9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들을 데리고 놀러 간 곳에서 잠깐 사이에 아들이 사고를 당했으니 그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오랫동안 마음을 못 잡고 방황하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렇게 하루 사이에 두 가지 이야기를 접하면서 많은 생각이 오갔다.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고인이 기른 고추는 7년 만에 다시 생명을 얻었고, 아들은 떠났지만 아들이 태어난 기념으로 구한 행운목은 잘 자라서 꽃을 피웠다. 10년을 키워도 꽃을 보기 어렵다는 행운목이 꽃을 피운 걸 보며 그는 이렇게 글을 마무리했다.
“아무래도 올해 많은 복을 받을 것 같아요. 행복은 선택의 문제라는데, 저는 늘 행복을 선택하니까요.”
어린 아들을 잃은 슬픈 아버지가 “행복은 선택의 문제”라고 말한다. 누군들 굳이 불행을 선택할까 싶지만 막상 불행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계속 붙잡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 역시 행복을 선택하기까지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선택의 문제라면 행복과 손을 잡아야 한다. 아무리 삶이 슬프고 고통스럽더라도 행복을 선택한다면 결국 우리의 행운목도 진한 향기로 꽃을 피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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