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문정희]무기의 시간, 악기의 시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8일 03시 00분


문정희 객원논설위원·시인
문정희 객원논설위원·시인
이라크의 고도(古都) 아르빌에 있는 살라딘대에서 젊은이들과 저녁놀이 질 때까지 시낭송을 한 적이 있다. 한국의 자이툰부대가 주둔하고 있을 때이니 벌써 육칠년 전쯤의 일이다.

이라크에서도 특히 아르빌은 쿠르드족이 사는 도시이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2600만 쿠르드인 중에 이라크에 410만 명이 살고 있고 그중에서도 아르빌 주는 98%가 쿠르드인이라고 한다. 전쟁 중이었기에 위험과 불안이 잠복된 상황이었다.

문명이란 무기(武器)를 악기(樂器)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상처 입은 흙과 성터와 폐허를 바라보았다.

배반과 절망의 역사 속에서도 4000년을 이어온 힘이 과연 무엇인가를 나 나름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문인과 젊은이를 만나고 싶다고 청했다. 폭력에 저항했던 역사와 고통을 공감하고 가능하면 한국 문학도 좀 소개하고 싶었던 것이다.

급히 마련한 자리인데도 강당을 채운 청중의 열기는 즐거운 당혹감을 감출 수 없게 만들었다. 대화는 한국어 영어 아랍어 쿠르드어 등으로 진행되었다. 소통에 장애는 없었지만 시간 소모가 많았다. 진지한 얘기가 어느 정도 진행된 뒤 내가 먼저 이런 제안을 했다.

“꾸란에는 시의 언어가 황금보다 훌륭하다라고 씌어있다죠? 지금부터 시낭송으로 서로의 마음을 그냥 주고받을까요?” 뜻밖에도 청중은 기다렸다는 듯이 환호를 했다.

내가 자작시 중에 ‘찔레’라는 시 한 편을 암송하자 한 대학생이 벌써 무대에 나와 있었다.

“너를 위해 이 시를 읊는다/어느 여름 목마른 석양에서/불길하게 시작된 이 길 한복판에서/그칠 줄 모르는 이 고통의 오랜 무덤 속에서//이것이 마지막 자장가다/네가 잠든 요람의 발치에서 부르는/이 거친 절망의 노래는 아마도/네 푸른 생의 하늘에서 메아리치리라/….”

이란 여성시인 포루그 파로흐자드의 시였다. 페르시안 소네트 하피즈의 시도 여러 편 암송되었다. 나도 소월, 미당, 만해, 윤동주를 읊었다. 감동의 열기가 공간을 뜨겁게 달구었다. 신비하게도 시를 통하여 더욱 쉽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참혹한 유랑과 절망의 시간을 끌고 온 힘이 바로 찬란한 문화와 문학의 힘에 있었던 것이다.

그날 그 젊은이들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감독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상에 등장한 시도 읊었고, 쿠르드족 출신 바흐만 고바디 감독의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속에 나오는 세찬 눈바람의 호흡도 읊었다.

티그리스 연안, 위대한 문명과 문화가 온몸으로 물결쳐 오는 것을 경험했다. 인류 최고의 문학인 아라비안나이트가 태어난 배경은 새삼 상기할 필요조차 없었다.

역사는 짧은 시간에 많은 물량을 이룬 숫자 따위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유장하게 산맥을 휘돌아 사뭇 광활한 모습으로 흐르는 것이었다.

그들이 이렇듯 고통과 상처를 깊게 여미는 태도, 힘든 현실 앞에서도 열정적으로 문화와 언어를 지키고 창조적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나니 실상 그곳의 현실이 꼭 비극적이라거나 그 민족들이 불행하다고만 느껴지지 않았다.

진정 아름다운 것, 진정 가치 있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거나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나는 뭔가 한 대 얻어맞은 기분으로 그날 밤 유난히 많은 별이 떠있는 중동의 밤하늘을 오래 쳐다보았다.

손마다 휴대전화가 있지만 진정한 소통이 안 된다고 느낄 때, 진종일 액정화면 속에서 떠도는 정보를 쫓다가 피곤에 빠졌을 때, 나는 그때 바라본 밤하늘의 싱싱한 별들과 바람 소리와 젊은 시낭송 소리를 떠올리곤 한다.

눈에 안 보이지만 아름답고 영원한 것을 꿈꾸어 보는 것, 그것을 상상력이라 한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을 창조라고 한다면 우리는 지금 상상력과 창조와 많이 동떨어진 환경 속에 살고 있다.

켰다 하면 장수 식품을 떠드는 텔레비전, 연예인들의 재치 있는 수다가 흙탕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프로그램들, 성형과 자살과 속도와 때 묻은 정치언어가 어지러운 속에 무슨 새로운 문화의 힘과 창조가 생겨날 수 있겠는가.

값싼 처세서나 위로나 힐링의 이름을 단 책들이 베스트셀러인 사회, 시청률이 아니면 어떤 교양도 파기되고, 실용 가치가 없으면 대학에서조차 중요한 인문학도 그만 밀려나는 현실은 사막보다 쓸쓸하고 전쟁만큼 무지하다.

불안과 경쟁을 숨긴 물질 중심의 세속 사회에 신흥 교회가 벌이는 부흥회처럼 긍정이 떠벌려지고, 행복과 희망이 입으로 소비되는 현실이 부끄럽기만 하다.

진실로 이제 그런 비본질적인 것 말고, 좀더 본질적인 것, 좀더 싱싱하고 기쁜 시간으로의 전환을 생각해 볼 시점이다.

사방에 여름이 성큼 다가들었다. 자칫하면 이번 여름도 책 한 권 없이 먹고 마시고 소비하고 떠드는 동물의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문정희 객원논설위원·시인 poetmoon@gmail.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