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딸의 첫 번째 목표는 여고 축구동아리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공을 차야 10m도 나가지 않는 실력에 축구라니 처음엔 어이가 없었다. 차는 것보다는 던지는 실력이 조금 나으니 차라리 야구를 하지 싶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고에는 야구동아리가 없었다. 겨울방학 내내 패스 연습을 한 아이는 축구동아리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고, 다행히 발보다 손 쓸 일이 더 많은 골키퍼가 됐다. 아이는 토요일 아침마다 야구선수 류현진의 등번호와 같은 99번을 단 유니폼을 입고 운동장으로 향한다. 학기 중 수업이 없는 토요일을 이용해 여고부 축구리그가 열리기 때문이다. 정식 명칭은 서울시교육감배 학교스포츠클럽대회 축구리그전. 학교스포츠클럽은 엘리트 선수가 아닌 취미로 스포츠 활동을 하는 학생들의 체육동아리를 가리킨다.
올해 축구리그전에 참가한 서울시내 여고 축구팀은 13개로, 이들이 한 학기 동안 리그전을 벌여 최종 승자는 11월 17개 시도교육청대회 우승자들끼리 맞붙는 종목별 전국대회에 참가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여고부 참가 팀이 많지 않아 단일조로 대회가 진행됐으나 올해는 2개 조가 편성될 만큼 여고 축구동아리 창단이 붐이라고 한다. 7개 팀이 조별 리그전을 하므로 이번 학기에 학교당 최소 6경기를 치르는 셈이다. 한 번의 패배로 탈락하는 토너먼트전 대신 리그전으로 바뀌어 신생팀도 꾸준히 경기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됐다. 사실 우승컵을 바라보며 전문적으로 훈련해온 선수들이 아니기에, 애초에 팀별 실력 차가 크지 않은 데다 경기를 하는 것 자체가 훈련이어서 대회가 진행될수록 실력이 는다.
이재현 운동생리학 박사는 “일반인에게 나타나는 운동 능력의 성(性) 격차가, 엘리트 선수들의 성 격차보다 크다는 보고가 있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일반적으로 여자는 남자에 비해 운동을 경험하는 데 소극적이나, 엘리트 선수들의 경우 남녀 구분 없이 적극적으로 운동 능력을 개발하기 때문에 남녀 간의 성 격차가 줄어드는 것이다. 쉽게 말해 여자들이 원래 운동을 못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으니 결국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는 ‘여학생은 수학 과학 과목에서 취약하다’는 식의 일반 과목에서 나타나는 ‘성 정형성’ 문제와도 연결된다. 남녀 학생이 섞여 있는 그룹에서 여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수학 과학 과목에서 자신감이 약해지지만, 여학생끼리만 경쟁할 경우 이러한 성 정형성에 대한 압박감이 없어 수학 과학 성적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여자들은 구기와 같이 승패를 가려야 하는 도전적인 스포츠나 단체 스포츠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단체 운동을 통해 아이들은 전략적 사고를 기르고, 타인과 협동하고 공정하게 경쟁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이러한 가운데 소극적인 아이들도 적극적으로 변화하고 리더십을 키울 수 있다. ‘귀한 딸일수록 운동을 시켜라’라는 말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24일 교육부(장관 서남수)는 ‘학교체육 활성화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골자는 2017년까지 전국 초등학교에 체육전담교원을 배치하고, 중고등학교는 단계별로 체육수업 시간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또한 체육활동에 소극적인 여학생들을 위해 남녀공학 고교에서 체육 분리수업을 권장하고, 여학생이 선호하는 종목의 학교스포츠클럽을 지원하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체력 증진 및 학업 향상뿐만 아니라 협동심과 배려심 함양 등 인성교육으로 학교폭력이나 따돌림 등을 완화하는 데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번엔 방향은 제대로 잡았다. 그러나 교육현장에서 교육부의 의도대로 실행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동안 체육시간이 없어서 체육을 못했던가. 그 시간이 아까워 수학 문제풀이를 하게 한 어른들의 조급함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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