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유란(馮友蘭)이 1934년 완성한 ‘중국철학사’는 중국인이 쓴 최초의 중국 철학사다. 그는 1948년 미국 대학의 방문교수로 있으면서 강의 교재로 쓰기 위해 영어로 된 ‘A Short History of Chinese Philosophy’라는 책을 새로 펴냈다. 내가 대학 교양과정에서 중국철학을 배울 때 교재도 이 영어책이었다. 그의 ‘중국철학사’는 1983년 영어로 완역돼 중국 철학사의 표준서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7년 5월 ‘월간에세이’에 기고한 ‘내 삶의 등대가 되었던 동양철학과의 만남’이라는 글에서 “숨 쉬는 것조차 힘들던 시절 내 삶의 한 구석에 들어와 인생의 큰 스승으로 남은 것이 펑유란의 ‘중국철학사’”라며 “논리와 논증을 중시하는 서양철학과는 달리 동양철학에는 바르게 살아가는 인간의 도리와 어지러운 세상을 헤쳐 나갈 지혜의 가르침이 녹아 있었다”고 썼다. 박 대통령의 방중에 앞서 중국에서 출판된 책 ‘박근혜 일기’에 이런 내용이 실리면서 중국 언론에서 화제가 됐다.
▷장즈쥔(張志君)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 주임이 올 1월 박 대통령 당선 축하 특사로 왔을 때 꺼낸 첫말이 “펑유란은 제 스승입니다”였다. 장 주임이 베이징(北京)대학을 다닌 1970년대 펑유란은 교수로 있었다. 펑유란은 1949년 장제스(蔣介石)가 대만으로 도망가면서 함께 가자고 요청했지만 뿌리쳤다. 그 대신 마오쩌둥(毛澤東)에게 “과거 봉건철학을 강의하고 국민당을 도왔다. 현재 나는 사상을 개조해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기로 결심했다”는 편지를 썼다. 마오쩌둥은 그를 베이징대에 복귀시켰다.
▷박 대통령은 수첩공주란 별명답게 ‘중국철학사’에서 맘에 드는 글귀들도 기록해뒀던 모양이다. 그는 얼마 전 기자 간담회에서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읽어보니 ‘이거 내가 실천하고 있는 거잖아’라고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 글귀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깊은 방안에 앉아 있더라도 마음은 네거리를 다니듯 조심하고, 작은 뜻을 베풀더라도 여섯 필의 말을 부리듯 조심하면 모든 허물을 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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