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광수]마디바! 넬슨 만델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일 03시 00분


김광수 한국외국어대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김광수 한국외국어대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필자는 넬슨 만델라 대통령을 두 번 만났다.

첫 번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포체프스트룸에 있는 노스웨스트대에서 유학하던 1996년 그가 대통령으로서 학교를 방문했을 때이고, 또 한 번은 2001년 김대중정부 시절 그가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였다.

남아공의 포체프스트룸은 백인 아프리카너들이 대이주를 통해 최초로 수도를 세운 곳이며, 노스웨스트대는 아프리카너 민족주의의 아성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도 이 대학의 흑인 학생 비율은 남아공 내 대학 중에서 가장 낮다. 또 포체프스트룸의 중등학교에서는 지금도 “백인이 우월하고 흑인은 열등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아마도 만델라는 대통령으로서 백인과 흑인의 화합을 호소하기 위해 이 도시와 대학을 방문했던 것 같다.

당시 만델라의 노스웨스트대 방문 소식에 교수들과 학생들은 연설회에 참석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필자는 지도교수가 백인이었지만 온건한 성향이어서 함께 참석했는데 만델라가 학교로 걸어 들어오자 너무나 극명한 상황이 벌어졌다. 소수의 흑인은 일어나서 환호를 하며 박수와 함께 노래를 불렀지만 백인 교수는 대부분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만델라 대통령은 추호의 당혹스러움이나 흔들림을 보이지 않았고 남아공의 백인과 흑인이 왜, 그리고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하는지를 호소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 경호실에도 흑인과 백인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 공간에도 흑인과 백인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남아공의 역사는 항상 양쪽이 함께해온 것입니다.”

다는 아니었지만 그가 연설을 마치고 나갈 때, 처음에는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던 백인 교수 중 많은 사람이 일어나서 대통령을 박수로 배웅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1997년 12월 만델라는 오랫동안 맡아온 아프리카민족회의 의장직을 자신이 후계자로 지명한 음베키에게 넘긴다. 어느 날 아침 신문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다했다. 이제부터는 젊은 사람들이 남아공의 미래를 헤쳐 나가야 한다”는 그의 말이 실린 기사를 읽으면서 감동으로 가슴이 뜨거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필자는 그때 ‘이것이야말로 남아공의 저력’이라고 느꼈다.

만델라는 이전부터 모든 권력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놀랄 만한 사건은 아니었으나 종신대통령을 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모든 권좌에서 물러난다는 것이 그동안의 아프리카 정치사를 생각하면 신선하다 못해 통쾌하기까지 했다.

그가 대통령으로서 이뤄낸 업적은 일일이 다 헤아리기 어렵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 공포에 질린 백인들에 대해 포용 정책을 실시했다. 화해와 용서, 민주화를 향한 ‘큰 정치’를 펼쳤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다름 아닌 그의 포용 정책에 근거를 둔다. 만델라는 ‘진실과 화해위원회(TRC)’를 설치하고 과거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에 저지른 범죄에 대해 진실을 말하면 사면하고 용서하는 방법으로 흑백 간의 화합을 통한 국가적 통합을 이루려 노력했던 것이다. 심지어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입안자와도 만나 손을 잡는 등 화해와 용서의 맨 앞에 서서 행동했다.

‘21세기 아프리카의 르네상스’를 주창한 만델라의 정치적 위상은 시간이 갈수록 빛을 발했다. 만델라는 국제무대에서 아프리카의 이익을 대변함은 물론이고 아프리카 내전을 중재하고 국가 간 경제 협력을 주도하는 데 역량을 발휘했다. 또 2002년 출범한 아프리카연합(AU) 창설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만델라의 행동은 아프리카 국가 지도자들에게 마음 깊은 존경을 이끌어냈다.

지금 지구촌 사람들이 아픈 그를 향해 보이는 관심과 사랑은 만델라가 평생 걸어온 정의와 인간의 존엄성, 용서와 화해의 삶에 보내는 경의의 표현이다. 이역만리에서 그의 쾌유를 빌어본다. 마디바(만델라의 존칭)! 만델라.

김광수 한국외국어대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넬슨 만델라#포체프스트룸#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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