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든 성배(聖杯)’로 불리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홍명보 감독(44). 그는 ‘1+4’가 아닌 ‘1+1’을 선택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이후 2018년 러시아 월드컵까지 5년 계약 제안을 뿌리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2018년까지 임기가 보장되면 느슨해질 수 있다. 간절해지고 싶은 마음에, 제 자신을 채찍질하고자 스스로 2년 계약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홍 감독의 닉네임 ‘영원한 리베로’를 ‘냉철한 승부사’로 바꿔줘야 할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축구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승부수를 던졌다. 축구인에게 최고의 영광이지만 한순간에 추락할 수도 있는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한 것 자체가 그렇다. ‘최적의 인물’이라는 평가가 대세지만 ‘시기상조’라는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또 장기 계약을 거부한 것도 범상치 않은 대목이다.
축구협회는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의 실망스러운 모습(골 득실 차 조 2위 턱걸이 본선 진출)에 대한 비난 여론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홍명보 카드’뿐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홍 감독은 “대한민국 축구가 제2의 도약기를 맞을 수 있도록 제가 가진 것을 모두 쏟아 붓겠다”며 당당히 포부를 밝혔다. 자신감과 능력을 겸비하지 못했다면 하기 힘든 과감한 베팅이다.
일각에선 “대회가 1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홍 감독이 너무 큰 도박을 하는 건 아닌가. 여유를 갖고 2018년 월드컵을 준비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세상사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5년 뒤를 과연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브라질 월드컵의 성적이 신통치 않다면 홍 감독이 4년 뒤 월드컵까지 버티기는 불가능하다.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의 숙명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땐 조별리그 경기 중 성적 부진을 이유로 감독이 경질된 적도 있다. 홍 감독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1년 보험’을 들었다. 브라질 월드컵의 성과가 국민의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2015년 호주 아시안컵에서 신뢰를 회복한다면 다시 발탁될 수도 있다. 브라질 이후 러시아 월드컵까지 염두에 둔 치밀한 포석이다.
홍 감독은 타고난 승부사적 기질을 ‘박주영 병역 회피 파문’ 때 이미 보여줬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축구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홍 감독은 골잡이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는 박주영을 기자회견장에 데리고 나와 “박주영이 군대에 안 가면 내가 대신 가겠다”며 대표팀에 선발했다.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박주영은 스위스와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선제 헤딩골을 넣었고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선 선제 결승골을 터뜨리며 2-0 완승을 이끌었다. ‘한국의 사상 첫 올림픽 축구 메달’은 이렇게 이뤄졌다.
한국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최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 대표팀의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예상 성적’을 묻는 질문에 ‘16강에 오를 것’이라는 응답이 58%에 그쳤다. 이는 앞선 세 번의 월드컵 때와 비교하면 가장 낮은 기대치다. 지역 예선 때의 부진한 경기력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홍 감독은 어려운 시기에 대표팀을 맡았다. 빠른 시일 안에 어수선한 대표팀 분위기를 추스르는 게 당면 과제다. 고질적인 골 결정력 문제를 해결하고 조직력도 끌어올려야 한다. 당장 20일에 개막하는 2013년 동아시안컵에서 대부분의 해외파가 빠진 대표팀으로 숙명의 한일전을 치러야 한다. 산 넘어 산이다. 그래도 홍 감독의 ‘형님 리더십’ ‘소통 리더십’에 기대를 걸어본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의 카드섹션 ‘꿈★은 이루어진다’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홍명보호(號)여! 쾌속 항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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