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동아시아 영토분쟁과 관련해 일본 정부의 반성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일본의 지식인들과 지지 성명을 내놓은 한국 중국 대만의 지식인들이 7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평화의 바다를 향해―동아시아 영토문제’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다. 7일은 1937년 중-일 전쟁을 촉발한 일명 루거우차오(蘆溝橋) 사건이 발생한 날이다.
한국에서는 김영호 한일지식인회의 공동대표(단국대 석좌교수·사진)가 참석해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관방장관, 니와 우이치로(丹羽宇一郞) 전 주중 일본대사 등 일본 내 주요 국제협력파와 동아시아 평화 구축방안을 논의한다.
김 대표는 2010년 ‘한일 강제병합은 무효’라는 한일 지식인 공동선언을 이끌어낸 주역이다. 4일 도쿄 국제문화회관에서 만난 그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아베 모델’이 아니라 ‘안중근 모델’로 동아시아에 평화 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중근 모델은 뭔가.
“안 의사는 민족주의자의 틀을 벗어나 더 큰 틀인 동아시아주의로 한국의 독립을 추구했다. 마지막 사형장에서도 ‘동양 평화를 위해 만세를 부르고 싶다’고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전 일본 시민사회는 국권(國權)에 민권(民權)을 내주는 대신 식민지 개척의 특권과 우월감을 누렸다. 안 의사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한국과 싸우고 중국 러시아 미국과 싸우면 더 많은 젊은이가 군대에 가 피를 흘려야 하고 국민은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게 돼 결국 망한다는 것이었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것도 일본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당시 분쟁의 전초지였던 뤼순(旅順)을 평화협력의 모태로 만들자고 주장했다.
이와 정반대가 ‘아베 모델’이다. 아베 총리는 영토 내셔널리즘을 부추겨 국민을 보수화하고 이를 군비 확충의 기회로 삼고 있다. 이렇게 되면 여기저기서 군비 확충 경쟁이 벌어지고 다시 내셔널리즘이 강화되는 악순환을 면치 못한다. 동아시아 평화협력은 후퇴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전략적 선택은 여전히 중요하다.
“한국은 왼쪽에 서면 중국의 변방이다. 오른쪽에 서면 미국과 일본에 이은 변방이다. 하지만 양자가 아니라 한중일 공동체를 추구하면 한국이 한복판이다. 그게 한국이 사는 길이다. 그런 아시아를 만들기 위해 가장 선두에 세워야 할 인물이 안 의사다. 프랑스 경제학자 장 모네가 유럽 공동체의 아버지라면 안 의사는 동양평화의 아버지다.
2009년 일본 진보잡지인 세카이(世界)에 실을 안중근론 원고를 탈고하면서 안 의사 사상에 너무 감격해 바로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 등 일본 친구들에게 전화했다. 이들에게 안 의사의 정신을 설명한 뒤 ‘내년이 한일 병합 100년인데 한일 지식인들이 이를 무효선언하자’고 제안해 이듬해 성사됐다.
이후 중국에서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을 만나 당신 영화는 참 좋은데 중화주의가 너무 강하다, 큰 중국이 중화주의를 들고 나오면 한국 일본 베트남은 미국에 붙을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럴수록 아시아는 분열되고 중국은 고립된다, 아시아를 끌어안는 영화, 안중근 영화를 만들라고 했다. 깊은 관심을 보였다.”
―한일 갈등이 풀릴 기미가 안 보인다.
“독도나 일본군 위안부는 한일 간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에 관해 일본 학자들이 이미 좋은 논문을 많이 발표했다. 객관적 진실을 밝히는 게 일본의 명예라고 생각하는 세력과 일본의 보수적 국익파 간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진실을 밝히는 사람을 친한파라고 하는데 이들은 상대가 한국이 아니더라도 할 일을 했을 것이다. 이들은 세계 양심세력과도 연대하고 있다. 한국이 영토나 인권 문제를 한일 간의 대결 구도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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