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지난해 계열사의 일감을 몰아받아 수익을 올린 기업주와 그 일가 1만여 명에게 상속 증여세 신고 안내문을 발송했다. 삼성 현대자동차 SK 한화 등 10대 그룹은 물론이고 다수의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에도 안내문이 날아들었다. 그런데 편법 상속이나 대기업의 ‘문어발 확장’과 무관하게 경영 합리화 차원에서 수직 계열사를 만든 경우까지 세금 벼락을 맞아 논란이 일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는 모(母)기업이 기업주 가족과 친인척을 돕기 위해 그들이 대주주로 있는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줘 주식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예컨대 현대자동차가 정몽구 회장의 아들 정의선 부회장이 차린 물류회사 현대글로비스에 일감을 몰아주거나, SK그룹 계열사들이 전산 관련 계열사인 SK C&C를 밀어주는 방식이다. 정부가 일감 몰아주기에 과세하는 것은 대기업 오너들이 이를 경영권 승계나 편법 상속의 수단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는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고, 경제 정의에도 위배되기 때문에 규제하는 것이 옳다. 당초 그런 취지 때문에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중견 중소기업의 현실은 많이 다르다. 코스닥 상장사인 중견기업 A사의 경우 경영효율화 차원에서 핵심 부품을 만드는 회사를 차려 부품을 납품받았다. 그런데 이 회사 대주주에게 증여세 6억 원이 부과됐다. 문제는 A사 대주주는 계열사 주식을 상속하지 않았을뿐더러 국내에는 다른 부품 공급처가 없다는 점이다. 과세를 피하려면 일본에서 3∼4배나 높은 가격에 수입 부품을 사서 쓸 수밖에 없다. B사도 비용 절감과 신규 투자 차원에서 원료를 생산하는 계열사를 만들었다가 역시 거액의 세금을 물게 됐다. 기술혁신에 노력해 새로운 기업을 만들었는데 증여세 폭탄을 맞은 것이다.
상속과 무관한 중견 중소기업에까지 증여세를 무겁게 부과하는 것은 일감 몰아주기 과세의 취지에 맞지 않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면 중견 중소기업의 일감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식이라면 중견 중소기업들이 계열사 합병에 나서면서 거꾸로 일자리가 줄어들 판이다. 정부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일감 몰아주기 과세로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