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의 달콤쌉싸름한 철학]문제적 인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문제적 인간, 전두환’이라고 했을 때 ‘문제적’이라 함은 문제 많은, 혹은 문제가 큰 인간이란 뜻이겠지요? 억울한 주검들 위에 권력의 탑을 쌓은 인간, 부패한 권력의 악취 때문에 공적까지도 평가받지 못한 인간, 그것이 ‘문제적 인간, 전두환’의 뜻일 겁니다.

그런데 철학하는 동네에서 ‘문제적 인간’은 부정적인 표현이라기보다 매혹적인 표현입니다. 그것은 독특한 운명 때문에 고통을 껴안고 살아가게 되는 선각자적 존재에게 붙이는 이름입니다. 평균인은 이해하지도, 이해할 수도 없는 세계를 알고 있고 살고 있기 때문에 때때로 삶의 소중한 것을 제물로 내줘야 하는 운명의 인간이 바로 문제적 인간입니다.

불가에서 산 중의 산은 깨달음의 산, 원각산(圓覺山)이지요?

문제적 인간은 오욕칠정을 끊고 삶을 끊고 화두의 바랑 하나 짊어진 채 바로 그 원각산에 기어오르려는 자들입니다. 원각산 한가운데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있다고 합니다. 천지가 갈라지기 전에 꽃 한 송이를 피우는 나무지요. 붉지도 희지도 않은 꽃, 검지도 푸르지도 않은 꽃입니다. 자신 속에서 바로 그 나무의 꽃을 본 니체는 “어찌하여 나는 하나의 운명인가”라며 탄식했습니다. 그것은 과대망상증 환자의 ‘자뻑’이 아니라 스스로가 문제적 인간임을 아는 자의 아픈 감수성이겠습니다.

‘문제적 인간, 전두환’ 기사를 읽은 후에 내내 떠나지 않은 대목은 6·29선언이 그의 작품이라고 하는 설보다도, 앞으로는 노태우 욕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대목이었습니다. 나는 왜 그것이 의미 있는 씨앗이라고 느꼈을까요?

정주영 회장의 소 판 돈을 기억하시지요?

장롱 속에서 아버지의 소 판 돈을 훔쳐 나와 미친 듯이 돈을 벌었다던 그의 생애에서 무엇보다도 감동적이었던 대목은 소 1001마리와 함께 고향으로 귀환했을 때였습니다. 사실 아버지 장롱 속에서 길 떠나는 여비를 훔쳐 나온 일이 뭐 그리 큰 잘못이겠습니까? 그런데 그걸 마음속 가시로 여겨 자신이 나온 자리로 돌아가는 표지석으로 삼는 자는 자신의 삶에 가치를 부여할 줄 아는, 자존감의 사람이겠습니다.

당신의 ‘마음속 가시’는 어떤 건가요? 우리는 언제 우리가 돌아갈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한 서점에 들어가려는데 외벽에 걸려 있는 문장이 가슴에 꽂힙니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나였던 그 아이가 어디서 어떤 상처 입었는지 성찰해 보신 적이 있나요? ‘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내면 아이의 상처가 보이고, 꿈이 보이고, 진실이 보입니다. 자기 속의 내면 아이와 대면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은 분명 자신의 삶을 존중하는 사람이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과거까지 자유롭게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 믿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마음속 가시는 시민의 목숨과 자유를 마음대로 짓밟은 것 아닐까요? 그래 놓고 자기 억울한 부분만 주먹을 불끈 쥐고 살았다면? 그랬던 이가 욕을 내려놓았다면 이제 그 힘으로 그 때문에 죽은 사람들 앞에 스스로 무릎을 꿇을 수 있는 건 아닌지요. 믿음을 주고 권력을 준 한 사람의 배신으로 입은 깊은 상처 속에서 이제 숱한 생명들을 빼앗은 살생의 죄, 살인의 죄를 삼킬 수만은 없음을 성찰해야 하는 거 아닌지요.

사람들이 전두환 일가의 삶을 지켜보는 건 돈 몇 푼 받아내기 위한 것이 아닐 겁니다.

전두환, 그래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던 자가 같은 말을 반복하는 일이 잦아졌다는 시점에서,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대면하며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하는지 보고 싶은 것입니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전두환#문제적 인간#정주영#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