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문태준]노경(老境) 문학의 전성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6일 03시 00분


문태준 시인
문태준 시인
독서에도 때가 있다.

위나라 사람 동우(董遇)는 ‘삼여(三餘)의 설’을 말했다. 그의 말은 이러하다.

“밤은 낮의 나머지다. 비 오는 날은 갠 날의 나머지다. 겨울은 한 해의 나머지다. 이 세 가지 나머지에는 사람의 일이 조금 뜸하므로 뜻을 모아 학문에 힘을 쏟을 수가 있다.” 동우의 말에 따르면 비가 잦은 요즘의 장마철도 독서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때가 된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최근 발표한 자료를 보니 올해 상반기 이용도서 가운데 1위는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차지했다고 한다.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2위에 올랐다. 인문학 도서와 자기계발서가 상위권에 올랐다. 20위권 안에 국내 문학작품이 없었다는 점이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다. 일본 작가들의 한국 시장 내 열풍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3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 또 특수를 누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시인인 나로서는 삼여의 때가 되면 시집을 손에 쥐게 된다. 조지훈은 “시는 천계(天啓)다. 그러나 그 천계는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라고 했고, 박두진은 “시는 언제나 우리의 삶을 새로 출발하도록 고무하며 그 삶의 근원으로 되돌아가게 할 것이다”라고 했으니 시집 읽기의 이익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시단이 생산하고 있는 시집들을 읽으면서 나는 저절로 흥겨워진다. 시단 어른들의 왕성한 창작력 때문이다. 노경(老境)에 든 시인들이 보여주는 작품들의 높은 성과는 가히 노대가(老大家) 시대를 열고 있다는 생각까지 갖게 한다. 한국의 시문학은 들끓는 생명에너지를 가진 청년 세대가 이끌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김소월은 스물넷에 시집 ‘진달래꽃’을, 백석은 스물다섯에 ‘사슴’을, 오장환은 20대 초반에 ‘성벽’을 출간했다. 게다가 젊은 나이에 요절한 시인들이 유난히 많았다. 문학평론가 유성호는 한 잡지에 게재한 글에서 “나도향, 이상, 김유정, 윤동주, 기형도 등은 서른을 못 채우고 돌아갔고, 김소월, 박용철, 이효석, 오장환, 김환태, 박인환, 신동엽 등도 한창때인 30대에 숨을 거두었다”며 “우리 문학은 중년 혹은 장년 이후의 문학적 전통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근대의 한복판을 지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노경의 시학’이 그 축적량으로 만만치 않은 자산을 가지게 된 데 대해 “노익장(老益壯)이라는 말이 있거니와, 이들의 시적 성취는 한국문학의 심층으로서의 노경의 시학을 그야말로 노익장으로 전면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문학의 새로운 수원(水源)으로서 노경의 문학이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박목월은 시 ‘개안(開眼)’에서 이렇게 썼다. ‘나이 60에 겨우/꽃을 꽃으로 볼 수 있는/눈이 열렸다./신(神)이 지으신 오묘한/그것을 그것으로/볼 수 있는/흐리지 않는 눈/어설픈 나의 주관적인 감정으로/채색(彩色)하지 않고/있는 그대로의 꽃/불꽃을 불꽃으로 볼 수 있는/눈이 열렸다’라고 썼으니 연륜은 쌓이면 쌓일수록 시야가 하늘처럼 트이고, 얽매임이 없으며, 두루 통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한다.

물론 노경에 이른다고 해서 시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진규 시인은 “시는 시를 기다리지 않는다. 내가 시를 기다릴 뿐이다”고 말했고, 문정희 시인은 “건강진단서가 지금 당신은 아무 병이 없다고 해도 만약 시인이 시를 쓰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불건강이요, 아프고 병든 생명”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시작(詩作)이 숙명인 시인에게 산고(産苦)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경에도 시를 짓고 있다는 사실은 릴케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의 심장 가장 깊숙한 ‘심실(心室)’에서 그가 끊임없이 내면의 새로운 것을 캐내려 했다는 증거인 것이니, 세상과의 값싼 유대를 버리고 견디기 어려운 고독의 시간을 살아왔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김남조 시인은 최근 제17시집을 펴냈다. 첫 시집을 1953년에 냈으니 첫 시집 이후 60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동안 시인은 시 짓는 기이한 전율로 살아오신 셈이다. 김남조 시인은 시 ‘미래의 시’에서 ‘지구의 끝날까지/시인은 오고 시는 쓰여지리니/희로애락의 사슬/천재들의 예지/해부도로 밝혀낼 인간의 진정성’이라고 써 시의 영원한 생명력을 예찬하기도 했다. 황동규 시인도 올해 새 시집을 펴내면서 ‘벌레 문 자국같이 조그맣고 가려운 이 사는 기쁨’을 뛰어난 발상으로 표현했다. 문학평론가 홍정선은 황동규 시인의 시편들을 읽으며 받은 생생한 희열을 ‘무서운 즐거움’이라고 표현하며 황동규 시인의 정신에 “무섭고 즐거운 존경”을 바친다고 썼다.

지금 시단에는 육체의 노화를 이겨내며 원숙하고 황홀한 시를 짓고 있는 어른들이 그 어느 시기보다 많다. 천계와 신명(神明)을 훔쳐 시를 지으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시단의 어른들께 존앙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문태준 시인
#독서#노경#시#육체의 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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