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배극인]한류는 살아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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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극인 도쿄 특파원
배극인 도쿄 특파원
요즘 일본 교민 사회에서는 한류(韓流)가 아니라 한류(寒流)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엄살인지 아닌지는 일본의 한류 1번지로 불리는 도쿄(東京) 신오쿠보(新大久保) 거리에 나가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주말마다 반복되는 일본 우익 단체의 혐한(嫌韓) 시위에 거리마다 넘쳐나던 관광객이 줄고 매출이 반 토막 난 지 오래다. 썰렁해진 신오쿠보 거리의 한식당과 화장품 가게 등 한인 업체 450여 곳은 한숨만 쉬고 있다 .

이병기 주일 한국대사는 지난주 금요일 오후 교민들과 함께 신오쿠보 일대 거리를 청소하며 현황 파악에 나섰다. 골목 구석구석 버려진 담배꽁초와 쓰레기를 줍는 이 대사의 모습을 취재하던 일본 언론에는 한일 간 마음과 마음의 교류를 당부했다. 저녁 간담회 자리에서 이 대사가 앞으로 시위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하자 한 교민은 이 대사를 향해 “힘들고 어려울 때 찾아온 친구가 가장 귀한 친구”라며 울컥했다. 그만큼 힘들었다는 얘기다.

한류가 식어가는 것은 일본인 가정의 안방에서도 느껴진다. 일본의 올 1∼4월 한류 드라마 판매 및 대여 금액은 지난해에 비해 20% 가까이 줄었다. 드라마를 보기 위해 어학원에서 한국어를 배우던 수강생 수도 폭발적인 성장세를 멈췄다. 해마다 늘던 한국 방문 일본인 관광객 수는 올 1∼5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6%에 그쳤다. 한국 내 관광업계와 호텔 항공사 경영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일본 내 한류는 과연 끝난 것일까. 사실은 그렇지만도 않다. 일본 최대 인터넷 쇼핑몰인 ‘라쿠텐’에서 스마트폰 케이스는 보통 1000엔(약 1만1400원)에 팔리지만 케이팝 아이돌그룹 JYJ의 영웅재중이 디자인한 MOLDIR 브랜드는 9배가량 비싼 8900엔에도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지난달 판매 직후 며칠간은 일간 베스트 1, 2, 3위를 휩쓸었다. MOLDIR 가방도 보통 상품보다 20%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 한류 상품 온라인 쇼핑 사업을 하는 한 업체 대표는 계기만 있으면 일본 내 한류는 다시 폭발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이를 위해 동방신기와 JYJ의 재결합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 수도 꼼꼼히 따져보면 한류가 좋아 한국을 찾는 개인 관광객은 변화가 없다는 게 한국관광공사의 분석이다. 문제는 동남아시아나 대만 등지로 발길을 돌린 회사 단체 관광객인데 이들도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회복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지상파만 봐도 NHK가 매주 일요일 오후 11시부터 1시간 동안 ‘동이’를, 수요일 0시 40분부터 1시간 동안 ‘시크릿 가든’을 방영하고 있다. TBS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1시간 동안 ‘이웃집 꽃미남’을, TV도쿄는 매일 오전 8시 25분부터 1시간 동안 ‘무신’을 방영하고 있다. 케이블과 위성방송 채널은 많게는 주 9편의 한국 드라마를 방영한다. 한류 팬이라는 한 일본인 여성은 “주변 눈치 때문에 밖에서는 한류 팬이라고 당당히 못 밝히지만 한류는 이미 붐의 단계를 지나 생활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엔화 약세 등을 배경으로 최근 일본을 찾는 한국 관광객이 급증하는 것도 일본 내 한류 팬에게 힘이 되고 있다. 방송에 관련 뉴스 보도가 되풀이되면서 한국에 대한 비(非)호감 분위기가 엷어지고 있다.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는 속담 그대로다.

이 대사의 현장 방문 때문인지 모르지만 마침 일본 극우단체는 7일로 예정했던 신오쿠보 시위 계획을 철회했다. 당초 이날 시위는 도쿄 한국학교까지 행진할 것으로 알려져 교민사회 전체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교민들은 시위 철회가 한일관계 복원과 한류 부활의 출발점이 되기를 조심스레 기대하고 있다. 올가을 교민들의 얼굴엔 웃음이 돌아올까.

배극인 도쿄 특파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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