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가슴속 글과 그림]나 자신을 뛰어넘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윈즐로 호머, 상어낚시, 1885년, 수채화
윈즐로 호머, 상어낚시, 1885년, 수채화
19세기 미국 화가인 윈즐로 호머는 ‘가장 위대한 해양화가, 미국 최고의 수채화가’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호머는 어떻게 미술사의 기네스북에 오르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을까? 해답은 두 젊은 어부가 상어낚시를 하고 있는 그림이 말해준다.

이 그림의 특징은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진다는 것. 화가가 뱃사람들의 일상을 직접 관찰하고 실제로 경험도 했기 때문이다. 호머는 카리브 해에 있는 바하마의 나소에서 바다를 체험했다. 그리고 열대의 강렬한 햇살과 바다 색깔을 생생하고도 신속하게 그리기 위해 유화 대신 수채화를 선택했다.

물감의 번짐과 스며들기, 투명기법이 만들어낸 놀라운 효과를 보라! 수채화로 그리지 않았다면 일렁이는 파도, 땀으로 번들거리는 어부의 벌거벗은 윗몸, 상어의 몸체가 바닷물에 투명하게 비치는 장면을 저토록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겉보기에는 바다낚시의 짜릿한 순간을 그린 해양화처럼 보이지만 그림의 메시지는 인간 승리다.

어부들은 고깃배보다 더 큰 상어를 맨손으로 잡지 않았던가. 즉 호머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영웅적인 남성상을 젊은 어부들에게 투영한 것이다.

이 그림은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늙은 어부 산티아고를 떠올리게 한다. 노인은 카리브 해에서 혼자 사흘 동안이나 18피트(약 5.5m)의 거대한 청새치와 사투를 벌였지만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나는 이 물고기에게 사람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으며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를 보여 주겠어…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진 않아…고통쯤이야 사내에겐 별거 아니지. 난 견딜 수 있어. 아니, 반드시 견뎌내야 해.’

늙은 어부는 왜 위험과 고통을 감수한 것일까? 고난과 역경에도 존엄성을 잃지 않는 남자가 진짜 사나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 협회장
#윈즐로 호머#해양화가#수채화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