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6월 19일 특별기자회견에서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대운하 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핵심 대선 공약이었던 대운하 사업의 포기를 선언한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그로부터 1년 뒤인 2009년 6월에도 “대운하의 핵심은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것이지만 우리 정부에서는 그걸 연결할 계획도 갖고 있지 않고, 제 임기 내에는 추진하지 않겠다”며 같은 의사를 거듭 확인했다. 그러나 감사원이 어제 발표한 4대강 감사 결과에 따르면 청와대는 두 발언의 중간 시점인 2009년 2월 “사회적 여건 변화에 따라 운하가 재추진될 수도 있으니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국토부에 요청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국토부가 나중에 대운하를 재추진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4대강 사업 계획을 짰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당초 계획보다 보(洑)의 크기와 준설 규모가 커져 유지관리비 증가 같은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또한 현대건설 대우건설 삼성물산 GS건설 대림산업으로 구성된 경부운하컨소시엄이 그대로 4대강 사업에 참여해 손쉽게 담합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 발표는 이명박 정부가 대운하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국민에게는 사업 중단을 선언해 놓고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감사원은 청와대에서 누가 국토부에 이런 ‘요청’을 했는지, 관련 문서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감사원은 이미 떠나고 없는 국토부 장관에 대해 주의 조치를 내릴 게 아니라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규명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에 대해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감사 결과가 사실이라면 국민을 속인 것”이라고 비판했고 이 전 대통령 측에선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어 신·구 정권이 충돌하는 모습이다.
이 전 대통령이 임명한 양건 감사원장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활동할 때인 올해 1월 4대강 사업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가 ‘새 정권 눈치 보기’라는 지적을 받았다. 독립기관인 감사원이 정권이 바뀔 때에만 팔을 걷어붙이는 인상을 줘서는 안 된다. 대형 국책사업에는 항상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면서 권력기관의 외압도 물리쳐야 진정한 독립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5년 뒤에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