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할리우드 미남 스타 브래드 피트가 제작과 주연을 겸한 영화 ‘월드워Z’(6월 20일 개봉)를 보았는가.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들이 인간을 돈가스라도 되는 양 쳐다보면서 침을 질질 흘리며 공격해 온다는 내용을 담은 이 영화에 돋보기를 들이대면 세 가지 재미난 서브텍스트(대사로 표현되지 않은 생각이나 견해)를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좀비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된 곳이 중국’이라는 원작소설 속 설정과 달리 영화에서는 ‘결국 바이러스가 시작된 곳은 알 수 없다’며 발원지를 슬쩍 뭉개버린다는 사실! 할리우드 영화의 주요 수출국인 중국 관객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지혜롭고도 비겁한 술수가 아닐 수 없다.
두 번째는 이 영화에서도 북한이 ‘개무시’를 당한다는 사실! 세계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유일하게 퍼지지 못하는 나라로 북한이 지목되는데, 그 이유가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다. 북한에선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다른 사람을 물어뜯지 못해 결국 확산될 수 없다는 것. 왜? 북한의 독재자가 2300만 북한 주민의 치아를 몽땅 빼버리는 놀라운 위기대처(?)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 할리우드 영화에서 떠오르는 ‘악동’으로 자리 잡은 북한이 이렇게까지 말도 안 되는 상상력의 소재로 전락하다니!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서글프기도 한 것이다.
세 번째는 이 영화가 놀랍도록 여성 비하적이란 사실! 유독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좀비들을 자극함으로써 주인공 피트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드는 장본인은 예외 없이 ‘여자’로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
인류 구원을 위해 좀비 집단에 목숨을 걸고 잠입한 주인공에게 뜬금없이 위성전화를 걸어 전화벨 소리를 만천하에 울리게 만드는 바람에 좀비들이 깨어나 주인공 일행을 공격하게 만드는 재수 없는 인물은 바로 주인공의 팔자 좋은 아내. 그리고 시끌벅적한 시위를 주동해 담 밖에 있던 좀비들이 그 소리에 자극받아 미친 듯이 담을 넘어오게 만듦으로써 유일한 인류의 안전요새를 몰락시켜 버리는 아무 생각 없는 존재도 바로 여성이다. 또 “총을 쏘지 말라. 총성에 좀비가 몰려온다”는 당부를 거듭 듣고도 그런 말을 언제 들었냐는 듯 곧바로 총질을 해대 좀비를 개떼처럼 불러 모으는 인물도 다름 아닌 이스라엘 여군인 것이다.
왜 인류 구원은 늘 남성의 몫이며, 이런 남자의 대업을 방해하는 존재는 예외 없이 여성이란 말인가! 나는 이 대목에서 피트가 ‘여성=시끄러운 존재’ 혹은 ‘여성=남자의 발목을 잡는 존재’라고 하는 매우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여본다. 혹시 요즘 동거녀 앤젤리나 졸리와의 관계가 뭔가 영 불편한 건 아닐지. 여성들이여, 피트를 그저 로맨틱한 남자로만 보지 말지어다. 이런 좀비 블록버스터를 통해 부지불식간에 여성에 대한 불온한 시각을 관객에게 주입하는 그야말로 어쩌면 여성에 대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마초일 수도 있으니….
#2. 아, 이걸 로맨틱 코미디의 진화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씁쓸한 현대인의 자화상이라고 해야 하나. 할리우드 영화 ‘저스트 어 이어’(5월 30일 개봉)의 클라이맥스를 보면서 나는 어지럼증에 빠지고 말았다.
줄거리는 이렇다. 첫 만남 후 불같은 사랑에 빠져 초스피드로 결혼한 남자와 여자. 그러나 ‘1년만 살아보라’는 주위의 충고를 이 커플은 곧바로 실감한다. 온종일 소파에 미라처럼 누워 쓰레기를 산더미처럼 쌓아놓는 남편의 더러운 ‘본색’에 아내는 실망하고, 때마침 곁에 나타난 매력적인 클라이언트의 애정공세에 아내는 살짝 흔들리기까지 한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에게도 자신의 모든 것을 이해해주었던 첫사랑 여인이 다가오는데….
어떤가. 이쯤 되면 영화의 결말을 손쉽게 예측할 수 있잖은가. 최근 로맨틱 코미디의 트렌드를 감안할 때, 결국 아내와 남편은 유혹을 물리치고 서로의 가치를 깨달은 채 진정한 사랑을 시작한다는 해피엔딩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아, 그런데 이 영화의 결말이 그렇지가 않다. 신선하다 못해 쇼킹하다.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비를 흠뻑 맞고 아내를 향해 달려온 남편은 진정성 넘치는 눈빛으로 아내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여자야. 아름답고 똑똑하고 영리하고 재미있어. 당신은 완벽해. 근데 나한텐 안 맞아. 코 찡긋하며 웃는 거 밥맛 없고, 머리 넘기는 모습도 재수 없어. 나랑 이혼해줄래?”
그러자 돌연 만면에 화색이 돌기 시작한 아내는 입이 찢어질 만큼 기쁜 표정으로 이렇게 외친다. “응! 기꺼이 이혼해줄게! 당신이 지금 나를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줬어! 고마워.”
둘은 기뻐서 끌어안은 채 “정말 잘됐다. 그렇지? 우린 이 순간만 기다려 왔는걸” 하며 깨끗하게 헤어진다. 그리곤 곧바로 서로 다른 짝에게 달려가 뜨겁게 포옹하며 영화는 끝난다. 제목인 ‘저스트 어 이어’는 ‘1년 만에 부부가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다’는 뜻이 아니라 ‘1년만 살아보면 이혼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으아, 이런 걸 ‘현실적’이라고 해야 하나? 요즘 세대는 이런 걸 ‘쿨’하다, 혹은 ‘시크’하다고 부른다지…. 아, 적응 안 된다,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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