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훈]“포기하지 마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2일 03시 00분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중고교 기말고사 시즌이다.

예나 지금이나 시험은 부담스럽다. 벼락치기 공부를 하며 진땀을 흘리는 학생들. 그렇기에 시험을 끝내고 맞는 홀가분함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기말고사를 끝낸 청소년들이여, 길지는 않겠지만 그 짧은 자유를 만끽하시길.

몇몇 학교는 학부모를 초청해 교사와 함께 시험 감독을 하도록 한다. 학부모가 교육 현장을 실제로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 자신의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려는 학부모들이 주로 신청한다.

A 씨는 며칠 전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 1학년의 학급 세 곳에서 시험 감독 체험을 했다. 소감을 묻자 A 씨는 “충격, 그 자체였다”고 했다.

시험 감독에 들어가기 전, 간단한 안내가 있었다. 교사들이 “감독하면서 놀라지 마시라”고 했다. 도대체 어느 정도이기에….

A 씨는 모든 학생이 문제지를 받으면 진지하게 시험에 임할 거라 생각했단다. 착각이었다. 뒷줄 학생들이 곧바로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잠을 청했다. 어림잡아 10여 명. 전체 학생의 3분의 1 정도가 시험을 포기하고 있었다.

그냥 두면 안 되겠다 싶어 교사에게 “아이를 깨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교사는 지쳤다는 표정을 지었다. “선생 말은 거의 듣지 않아요. 깨워도 다시 잡니다. 그나마 시험 감독을 하는 학부모가 깨우면 듣는 척할 때도 있어요. 친구의 부모니까.”

몇 년을 입시 공부하느라 지친 고교생도 아니다. 이제 중학교 1학년생. 아직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이 벌써 공부와 담을 쌓고 있는 것이다. 시험 종료 5∼10분 전, 그 아이들이 일어나 해답지를 챙겼다. 백지로 내면 불이익이 있을지도 모르니, 대충 답을 찍는 것. A 씨는 씁쓸하다고 했다.

또 다른 학급은 무척 산만했다. 교사가 해답지(OMR 카드)를 나눠주고, 마킹하는 요령을 일러줬다. “검은색 사인펜으로 마킹하다 실수하면 새 카드에 써야 하니까 먼저 빨간색 사인펜으로 마킹했다가 완성되면 검은색으로 다시 해라.”

앞줄에 앉은 한 학생은 교사의 말을 듣지 않았다. 실수가 이어졌다. 세 번이나 OMR 카드를 바꿨다. 참다못한 교사가 “빨간색 사인펜으로 먼저 하라니까!”라며 질책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학생은 검은색 사인펜으로 마킹하기 시작했다. 화가 난 교사는 “정말 지겹게도 말 안 들어”라며 돌아섰다.

이런 상황에서 뒷줄에 앉은 한 학생이 “선생님. 걔한테 OMR 카드 주지 마세요”라고 소리쳤다. 다른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어수선한 분위기는 이어졌다. 아이들 몇 명이 서로 잡담을 하며 떠들었다. 교사가 주의를 줬다.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그 아이들이 다시 떠들었다.

A 씨는 “2, 3학년으로 올라가면 더 심해질 텐데,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필자가 이 사례를 친구에게 전했다. 그 친구는 “그 학교가 강북에 있어서 그런 거야”라고 했다. 강남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왜 강남, 강남 하는데? 3분의 1이 시험 때 엎어져 자는 학교에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겠어? 공부도 환경이 좋아야 하는 거야.”

최근 청소년 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와 관련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 국사 과목을 넣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제대로 수업도 되지 않고, 시험도 사실상 거부하는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국사가 필수 과목이 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시험 과목 하나만 더 늘어난 것 아니겠는가. 강남이든 강북이든 교실부터 살려놔야 한다.

중 1이 벌써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한다. 방치하는 건 이 사회의 직무유기다. 그 아이들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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