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 모욕 ‘귀태’ 발언, 미국 의회라면 어땠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3일 03시 00분


2009년 9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건강보험 개혁법안의 중요성을 강조하자 한 의원이 “거짓말”이라고 고함을 질렀다. 법안에 반대하는 공화당의 조 윌슨 하원 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이었다. 연설 직후 윌슨 의원은 “부적절하고 유감스러운 발언이었다. 예의 부족을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사과를 받아들였음에도 공화당 지도부는 윌슨 의원을 단호하게 질책했다.

후폭풍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윌슨 의원의 후원회 간부 3명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전체의 이미지가 실추된 슬픈 날”이라며 이튿날 사임했다. 미 하원은 윌슨 의원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켜 그의 정치 생명에 치명상을 입혔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 하원은 의원 행동지침을 개정해 “대통령은 거짓말쟁이다” “대통령은 위선자다” 등의 말을 의원들이 쓰지 못하게 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 대변인이 그제 국회 정론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귀태(鬼胎)라고 하고 박근혜 대통령을 귀태의 후손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귀태는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사람들이 태어났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미 의회에서 야당 의원이 대통령에게 이런 발언을 했다면 윌슨 의원의 사례에 비춰 대단히 무거운 징계를 받았을 것이다. 홍 원내 대변인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전문연구원을 거쳐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의 정책보좌관으로 일해 공인(公人)이 취해야 할 언행과 도리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누구보다 말을 가려 써야 할 원내 대변인이 대통령을 ‘귀태의 후손’이라고 지칭한 것은 저질 폭언이다.

신경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7일 광주에서 열린 ‘당원 보고대회’에서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을 가리켜 “이런 미친 ×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막말을 했다. 같은 당 우원식 최고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을 연산군에 빗댔다. 노웅래 민주당 의원은 트위터에서 “박근혜 대통령 더위 드셨나요?”라고 비아냥댔다. 정치적 신념이 다른 정당을 공격하더라도 그 말에는 절제와 품위가 담겨 있어야 한다. 파문이 커지자 홍 원내 대변인은 어제 대변인직을 사퇴했지만 이대로 끝내서는 안 된다. 국회는 폭언 방지를 위해 근본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새누리당이 이번 발언을 빌미 삼아 국회 일정을 중단하면서 정쟁에 뛰어든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홍 원내 대변인의 폭언은 분명하게 따지되 국회를 멈추게 해서는 안 된다.
#귀태#홍익표#박정희 전 대통령#박근혜#버락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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